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관계를 맺는 것은 알게 모르게 서로 간에 주고받는다는 겁니다. 마음도 주고받습니다. 내 마음이라고 마음에 다 들지는 않습니다. 인정하기 싫은, 버리고 싶은 마음 한쪽을 남에게 던져 버리는 심리적 행위를 ‘투사(投射)’라고 합니다. 투사는 정신분석에서뿐만 아니라 세상살이에서도 넘쳐납니다.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려고 자기 탓을 남 탓으로 둔갑시키는 ‘방어기제’입니다. 남 탓이라고 여기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겁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투사의 끝판은 끊임없이 반복해서 투사(鬪士)가 되는 겁니다. 자신을 돌아보려 하기보다는 남 탓만 하면서 무턱대고 싸우려고 덤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해서 확신의 늪에 빠지면 상대를 감정적으로, 비이성적으로 대하면서 공격적인 행동도 가리지 않습니다.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모여서 투사를 하는 경우는 투사가 단단해지면서 파괴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이때 집단을 이끄는 사람, 지도자가 어떤 사람인지가 결정적으로 판을 가릅니다. 그 사람의 심리 상태와 유불리에 따라 공격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도가 결정됩니다.
‘투사’가 자신이 인정하기 싫은 자신 내면의 어떤 것을 밖으로 던진 것임에도 악마화된 상대의 모습에 담긴 자신의 모습은 찾아내지 못합니다. 상대를 악마화할수록 자신은 ‘선한 존재’로 우뚝 서는 심리적 보상 때문입니다. 빛나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도 상대에 대한 공격은 지속해야만 하고, 자기 성찰 능력은 점점 사라집니다. 뻔히 드러나는 비이성적 행위도 공격 본능의 대리 만족이라는 보상이 있기에 세상에 쉽게 번집니다.
선동을 통해 양극화의 극단주의로 추종자들을 몰아가는 지도자는 자식이 나쁜 행동을 하도록 부추겨서 대리 만족과 이득을 얻는 부모와 같습니다. 이성적인 지도자라면 자신의 공격성도 다스리면서 추종자들의 무의식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괴성도 순화시켜 돌려줘야 합니다. 정신분석에서는 파괴적인 투사도 치료적 대화의 영역에 머물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힘으로 이어지지만, 세상을 엄습한 투사의 폭풍은 말이 아닌 파괴적 행동으로 발현되기에 위험합니다.
지도자와 추종자가 밀착하면 판단력은 감소하고 파괴력은 증가합니다. 서로 관계를 지키면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누그러뜨릴 것인가, 부추길 것인가는 지도자가 책임을 져야 할 몫입니다. 선택에 따라 사회적 파급효과가 달라집니다. 쪼개고 편을 가르는 일은 쉽지만 이미 쪼개진 것을 합치는 일은 어렵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적대감에 불타는 추종자가 스스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지도자가 할 일입니다. 적대감의 일부는 추종자의 마음에서 밖으로 던져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지도자는 따듯한 엄마와 같이 자식들을 가리지 않고 너그럽게 품에 안습니다. 자식들끼리 싸워도 말리고 달랩니다. 싸움을 부추기고 구경하거나 동네 아이 때리고 오라고 선동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는 하지 않을 일을 자식들에게 시키지 않습니다. 이성적인 지도자는 갈등을 완화하려고 노력합니다. 비이성적인 지도자는 무능함의 허기에서 벗어나려고 갈등을 증폭시켜 먹거리로 삼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