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총재가 기획재정부 장관을 요즘처럼 거의 매주 본 적이 없다.”
통화, 금융정책 엇박자로 가계부채 위기가 심각해진 게 아니냐는 지적에 최근 만난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그는 “이창용 총재와 추경호 부총리가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위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어서 호흡이 잘 맞는다”고도 했다.
김상운 경제부 차장
무엇이 문제일까. 1차적으로는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이 폭등한 영향이 크다. 여기에 올 들어 정부가 특례보금자리론 등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각종 부동산 규제를 풀면서 집값 상승 기대감을 키웠다. 추 부총리는 5일 기자간담회에서 특례보금자리론 등의 영향을 인정하면서도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갖고 일관성 있게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책 파트너인 한은은 통화, 금융정책의 엇박자가 문제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최근 내놓았다.
한은은 ‘9월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은행의 가계대출이 4월 이후 증가로 전환된 것은 은행의 완화적 대출 태도, 여신금리 하락, 특례보금자리론 공급 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관련 정책은 긴 시계에서 일관되게 수립돼 시행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한마디로 고금리 기조의 통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대출 규제를 푼 정부 금융정책(거시건전성 정책)의 엇박자로 가계부채가 늘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은에 따르면 주요국 사례에서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과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이 같은 방향이면 가계대출 억제 효과가 뚜렷했다. 그러나 두 정책의 기조가 서로 다르면 가계대출 억제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정부가 내년 총선을 의식해 부동산 경기 부양을 시도하면서 가계부채 정책의 일관성을 무너뜨린 게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기자는 지난달 14일자 같은 지면에서 전기요금 등 에너지 정책의 ‘탈(脫)정치’를 강조했다. 가계부채 정책도 마찬가지다. 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쳐내고 통화, 금융정책의 일관성을 지켜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김상운 경제부 차장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