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단속에도 수법 교묘해져 전문가가 쓴 글로 속여 투자자 현혹 피해 유명인 “빅테크가 불법 방조” 카카오 “신고 있어야 조치” 입장
“물론 본인입니다. 매일 전문적인 주식 분석 및 우량주 추천을 공유할 테니 제 실력을 검증할 수 있으실 겁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사칭한 불법 투자 사이트 운영자는 11일 본보 기자가 일대일 채팅에서 본인 확인을 요구하자 이처럼 말했다. 이어 그는 “수익은 최소 30% 이상”이라며 국내에는 생소한 중국 종목에 대한 투자를 유도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명 인사를 사칭한 불법 리딩방 광고가 확산되고 있다.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의 단속에도 수법이 점차 교묘해지며 투자자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짜 광고는 김 전 위원장 외에도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등 경제 분야 유명인들이 직접 글을 작성한 것처럼 속여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있다. 카카오톡 등 메신저와 SNS의 프로필 사진 및 이름을 임의로 설정할 수 있는 점을 악용한 방식이다. 장 교수의 명의를 도용한 광고에는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퇴직을 앞둬 막막했는데 큰 힘이 된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유사 투자자문업자의 불법행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짜 광고를 통해 방문한 사이트에선 업체의 이름이나 등록 여부 등 기본적인 정보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들이 등록된 유사 투자자문업자일지라도 대가를 받고 일대일 투자 상담을 제공한다면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유명인을 사칭한 이 같은 불법행위가 기승을 부리자 금융당국은 집중 단속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6월 자산운용검사국 내 유사 투자자문업자 등의 불법행위 단속반을 설치하고 ‘불법 리딩방 집중신고 기간’을 운영 중이다. 실제로 유명인을 사칭한 문자를 보내 투자자를 채팅방에 초대한 후 해외선물 및 가상자산 투자를 추천하며 가짜 거래소로 유인해 수억 원을 편취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최근 퍼지고 있는 유명인 사칭 사기 등에 대해서는 밀착 감시를 통해 정황을 파악한 뒤 수사기관에 통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의를 도용한 광고가 확산되자 김 전 위원장과 주 전 대표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빅테크들이 소극적인 대처로 불법행위를 방조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주 전 대표는 “사칭 계정을 신고했더니 페이스북에서 ‘해당 콘텐츠가 커뮤니티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소셜미디어 회사와 수사기관, 담당 부처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상권 침해와 별개로 현행법상 온라인에서 명예훼손, 사기 등 사칭으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해야만 민형사적 대응이 가능한 점을 사칭 계정이 난립하는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사칭 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할 경우 과도한 처벌이 될 수 있다”며 “점차 고도화되는 양상을 반영해 인공지능(AI) 같은 특정 기술을 이용한 경우 처벌을 가중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