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민간인 학살의혹’ 지상전 변수로 이스라엘 집단농장에 시신 수백구… “참수된 아이들 도저히 안 잊혀져” 하마스 “가자지구 학살 덮으려 조작”… “인질 3명 석방” 영상공개 여론전
11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의 장례식이 열렸다. 참석자들이 담요에 덮인 시신을 부둥켜안고 오열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이 국경 지역 통제권을 회복하고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학살된 실상이 드러나는 가운데 이스라엘 역시 가자지구에 대규모 공습을 가해 팔레스타인 희생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텔아비브=AP 뉴시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받은 가자지구 접경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하마스가 자행한 민간인 살상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1일(현지 시간)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탈환한 키부츠(집단농장)에서 총에 맞거나 불에 탄 채 숨져 있는 시신 수백 구가 발견됐다. 일부 생존자들은 키부츠에 침투한 하마스 대원들이 주택에 불을 지른 뒤 불길과 연기를 피해 집 밖으로 빠져나오는 민간인들을 무차별 사살했다고 CNN에 전했다. 참수당한 영유아 시신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 “시신들 참혹해 아이들 눈 가려”
8세 딸을 잃은 키부츠 주민 톰 핸드는 CNN에 “이곳에서 폭격 경보는 흔한 일이라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며 “총소리가 들린 뒤에야 친구 집에 놀러 갔던 딸을 데려오기에 이미 늦었음을 깨달았다”며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토로했다. 그는 얼마 전 부인이 암으로 사망한 뒤 홀로 딸을 키워 왔다.
또 다른 생존자 로탄은 “이스라엘군 기지가 불과 몇 분 거리에 있어 야구방망이로 문고리를 고정한 채 구출되기를 기다렸다. 음식도 물도 없이 20시간을 기다려야 했다”면서 “농장을 탈출할 때 이웃들과 군인들의 시신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어 아이들의 눈을 가려야 했다”고 말했다.
하마스 대원들이 10대 소년 앞에서 부모를 총으로 살해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11일 미 ABC 뉴스에 따르면 하마스는 7일 키부츠의 한 주택에서 로템 마티아스(16)의 부모를 살해했다. 마티아스는 “괴한들이 집에 들이닥쳐 부모님에게 총격을 가했다. 아빠는 ‘팔을 잃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고, 엄마는 내 위에 쓰러져 숨을 거뒀다”며 “시신이 된 엄마 밑에서 30분간이나 죽은 척을 했다”고 말했다.
● ‘민간인 대학살’ 지상군 투입 명분 될 수도
이스라엘 정부는 하마스가 참혹한 대학살을 자행했다며 강하게 규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1일 TV 연설에서 “우리는 짐승, 야만인들을 봤다”며 “세계가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말살한 것처럼 우리는 하마스를 파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일부 야권과 전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내각을 새로 꾸리는 등 내부 결집에 나섰다.
하마스는 민간인 학살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마스는 이날 성명을 내고 “서방 매체들은 팔레스타인 저항군이 어린이 참수와 여성 성폭행에 연루됐다는 근거 없는 비난을 유포하고 있다”며 “이는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인한 잔혹한 범죄로부터 주의를 돌리려는 수작”이라고 주장했다. 하마스는 이어 가자지구로 끌고 간 인질 150명 가운데 여성과 두 자녀 등 3명을 석방했다면서 관련 영상을 공개했다. 국제사회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의식한 것이다. 그러자 이스라엘 매체들은 해당 영상이 이번 공격 전에 촬영된 거짓 영상이라고 일축했다.
하마스의 민간인 공격으로 인한 참상이 알려지면서 이스라엘은 하마스 궤멸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하마스는 “거짓 정보”라고 맞받아치며 양측은 국제사회를 향해 치열한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양측 간의 전쟁이 확전 기로에 놓인 상황에서 민간인 대학살이 공식화될 경우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지난해 4월에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부차 등에서 민간인을 고문하고 총살한 ‘부차 대학살’이 확인되면서 국제사회가 ‘반(反)러시아’ 전선으로 더욱 결집하는 계기가 됐다.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