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유리지.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유리지, 용띠를 위한 골호와 상자. 2001년.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생각만 해도 마음 아플 부모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준비했던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 작품 세계를 소개합니다.
아픔을 치유하는 아름다움
1960년대 미술대학을 다니고 1970년대 미국 유학 생활을 했던 유리지는 1세대 모더니즘 공예가로 꼽힙니다. 그런 그가 장례용품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 유영국이 말년을 준비하던 2000년 무렵이라고 합니다.이전까지는 금속을 재료로 한 일상용품이나 서정적인 오브제를 만들었던 그는, 한국 전통 장례문화를 근거로 한 골호, 상여, 사리구, 부도 등의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 2007년 ‘유영국저널’에 실린 이인범 상명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유리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경의를 표한다기보다도 아버지가 오래 편찮으신데 사람이 죽는 건 다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너무 안타까운데 뭘 해드릴 것 없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작이 된 거지요.”
1977년에는 다리가 아픈 아버지를 위해 ‘지팡이’도 제작했던 그녀가 장례용품에 도전한 건 단순히 가족에 대한 사랑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골호와 사리함은 죽은 자가 현세에서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그릇이므로 그 시대의 가장 정교한 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습니다.
유리지, 지팡이, 1977년, 은 화류목 델린,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소장.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장례는 죽은 자를 위한 의례이지만 산 자의 손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를 보여준다. 공예가는 이러한 절차에 개입해 각자의 정서적, 심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산 자가 떠나는 자를 아름답게 보냄으로써 그 죽음을 치유하도록 도울 수 있다.”
삶 그 자체였던 공예
유리지, 바람에 기대여, 1987, 은 금부 백동.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그녀가 자연을 영감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자연 풍경에서 출발해 추상화로 나아간 유영국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에 대해 생전 유리지는 “아버지 작품과 제 것을 의식적으로 연결시켜 생각해본 적은 없다”면서도 “아버지가 색과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나 역시 자연과 사람의 삶을 연관시켜 작품을 구성할 때 공간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말합니다. 그런 것을 배웠다기보다는 자연스레 몸에 밴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2010년 우면동 작업실에서 유리지. 오른쪽 보이는 은 작품은 2002년 만든 ‘골호-삼족오’.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또 2004년에는 자신의 작업실 일부를 ‘치우금속공예관’으로 만들어 금속 공예를 알리는 데 힘썼습니다. 그러다 2013년 2월 백혈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젊은 공예가를 양성하겠다는 그녀의 꿈은 갑자기 중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유자야 유리지공예관장,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 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언니는 현대 금속 공예의 개척자이면서 교육자였습니다. 예술가의 길에 너무나도 철저했던 저의 아버지는 그 시절 여성은 예술가와 결혼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언니는 예술가의 길을 택했고 그러니까 공예와 결혼을 한 셈입니다.
그런 언니는 불우한 학생들을 보면 늘 도와주고 싶어 했고, 젊은 공예가를 양성하는 것이 큰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해 상을 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땅의 공예인들이 이 상의 제정 취지를 이해하고 공모에 응해주시길 바랍니다.“
최근 서울시에서 공고를 시작한 유리지공예상은 12월 11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공모를 받습니다. 전국 단위 격년으로 운영되며 1회 시상식은 내년 8월 17일(유리지 작가의 생일)에 열립니다.그런 언니는 불우한 학생들을 보면 늘 도와주고 싶어 했고, 젊은 공예가를 양성하는 것이 큰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해 상을 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땅의 공예인들이 이 상의 제정 취지를 이해하고 공모에 응해주시길 바랍니다.“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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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