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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시작한 여의도 주상복합 아파트 ‘1000평 유휴지’ 왜?

입력 | 2023-10-13 17:24:00

12일 입주민 맞이가 한창인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브라이튼 단지. 마당을 에워싼 지상공간이 기부채납시설이다. 2023. 10. 12/뉴스1


최근 입주를 시작한 주상복합 아파트의 지하 1층 1100평 규모 기부채납부지 용도를 두고 구청과 주민 간 갈등을 빚고 있다.

당초 ‘지역 최대 구립도서관’으로 계획했는데, 부지를 공공기여 형태로 소유하게 된 구청이 방향을 틀어 주민센터 및 체육문화 복합시설을 추진하려다 반대에 부딪힌 것이다.

결국 ‘노른자땅’이 최소 2년은 유휴지로 남는 셈인데, 이번 사례를 계기로 서울 전역에서 활발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기부채납 시설 효율적 활용과 공공성 제고 논의를 심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12일 서울시와 영등포구, 정치권에 따르면 여의동 주민들은 브라이튼 도서관 원안 유지 동의 서명을 시작했다.

브라이튼은 옛 MBC 부지에 조성된 최고 49층 높이 아파트 2개동 454가구·오피스텔 1개동 849가구 주상복합 단지다. 18년 만에 여의도에 들어선 새 아파트이자, 속속 재건축을 추진하는 주변 단지와 더불어 여의도 정비의 신호탄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제가 불거진 건 올 연말 개관을 목표로 기획해온 지하 1층 기부채납부지 1100평 규모 구립도서관 조성 사업이 지연되면서다.

영등포구청과 국민의힘 영등포을 당협에 따르면 구청 측은 올해 8월 △주민센터 450평 △도서관 300평 △문화체육시설 300평 복합시설을 유치하는 새 계획을 제시했다. 이후 도서관 규모가 협소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당정은 지난 9월 당정협의회에서 도서관을 600평으로 대폭 늘리고 주민센터를 450평으로 유지하는 한편 문화체육시설을 200여 평으로 하는 수정안을 마련했다.

당시 당정협의에서는 현재 동의여도 끝자락에 있는 주민센터 이용이 불편하다는 데 공감했다. 여의동 주민센터는 성모병원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지하철 여의도역과 IFC(국제금융센터) 연결로에 현장민원실도 운영 중이다.

반면, 주민들은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 어르신이 활용할 수 있는 랜드마크형 도서관 조성을 기대해 왔다. 서울시가 여의도에 추진하는 금융특정개발진흥지구에 발맞춰 ‘영어 친화’ 도서관으로 조성하는 방안도 거론돼온 터다.

한 주민은 “여의도에 마땅히 아이들이 이용할 도서관이 없어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건의해왔고 구청에서는 ‘가장 먼저 재건축되는 아파트 단지’에 기부채납 공공시설로 조성해주겠노라고 2017년 약속해 기다려온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 주민센터는 2010년 단독건물로 수십억원을 들여 지었다. 브라이튼 전에는 동네 최신 건물이 주민센터였다”면서 “이제 와서 주민센터를 굳이 도서관 부지로 이전할 이유도 없고 이후 주민센터의 활용 방안도 제시된 바 없다”고 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브라이튼 기부채납부지에 구립도서관을 조성하는 안이 2019년 얘기된 건 맞는다”면서도 세부 안건을 두고 소통 문제로 갈등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도서관 건립 매뉴얼상 공간의 45%만 장서로 채우고 나머지 공간은 사무실 등으로 채울 수도 있기 때문에 구청 측에선 구상을 다양하게 열어뒀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아직은 확정된 계획이 아니라 의견을 수렴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주민센터 이전 이유에 대해선 “접근성이 낮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부연했다.

구청과 주민 간 의견 수렴 절차를 포함해 어찌 됐든 2023년 12월 도서관 준공을 기다려온 주민들로선 최소 2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공공기여로 획득한 자산…공공건축물 분류 안 돼 관리 ‘사각지대’

이번 사례를 계기로 현재 서울시 곳곳에서 추진 중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장 기부채납 시설 공공성 제고 방안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부채납은 도시 개발·정비 과정에서 사업 인·허가 조건이나 지구단위계획구역 내 용적률·건폐율 완화 인센티브와 연계해, 공공기관이 사업시행자로부터 시설이나 부지를 무상 양도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이런 기부채납 건축물 운영 실태 조사 결과, 적합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별도의 예산 투입’이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게 건축공간연구원(‘기부채납 건축물의 효율적 조성과 운영을 위한 과제’, 배선혜 부연구위원, 김상호 선임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초기 단계 기획 부실이나 지속적인 운영부서 변경 등 이유로 유휴공간이 발생한 사례도 잦았다. 무엇보다 타당성 검토 등과 같은 사전 절차 규정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에 자치단체장의 공약사업이 적용되기 쉽다고 연구원은 꼬집었다.

연구원은 “사전기획을 강화해 사업 초기부터 실제 운영자의 요구사항을 반영할 수 있다면 준공 이후 유휴공간이 발생하거나 추가 예산을 마련해 별도의 공사를 추진하는 관행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궁극적으로는 애초 공공기여 형태로 이뤄지는 기부채납 건축물을 공공건축물의 범주에 넣어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현행법상 공공건축물은 ‘공공기관이 건축하거나 조성하는 건축물’로 정의돼, 민간이 건축하고 공공에 기부채납하는 건축물이 제외되는 탓에 공공성 확보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기본적으로 작년 6월 구청장이 바뀐 뒤 예산을 이유로 도서관 운영주체를 국립이나 시립으로 바꾸려다 실패해 불거진 것으로 안다”며 “구청이 자산을 획득해 놓고 2년(예정)이나 자산을 놀리는 건데 민간 부문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