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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권력 3위 내쫓고 ‘트럼프 완장’ 두르고… 이젠 공화당 주류 노린다 [글로벌 포커스]

입력 | 2023-10-14 01:40:00

美정가 뒤흔드는 태풍의 눈 ‘프리덤코커스’




《美 하원의장 후보 하루만에 사퇴… 또 의회 흔든 ‘프리덤코커스’



미국 공화당의 하원의장 후보로 선출된 스티브 스컬리스 원내대표(사진)가 12일(현지 시간) 의장 도전 의사를 접었다. 공화당 의원 221명 중 강경파 20여 명이 스컬리스를 반대하면서 하원 전체 433석 중 과반(217표) 확보가 불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내부 경선에서 2위를 한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이 차기 후보로 거론되지만 강경파의 불복에 반발하는 의원들이 조던을 반대하고 있다. 초유의 하원의장 해임으로 촉발된 미 의회 마비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돌입했다. 이를 주도하며 공화당 주도권 장악을 노리는 강경파 의원모임 ‘프리덤코커스’를 들여다봤다.》




미국 공화당 하원의장 후보였던 스티브 스컬리스 원내대표가 12일(현지 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의장직 도전을 철회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완전한 혼란을 원하는 그들은 입법 테러리스트다.”

미국 공화당 소속으로 2015년까지 하원의장을 지낸 존 베이너는 2021년 ‘프리덤코커스(Freedom Caucus)’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웨이터 출신으로 미국 권력서열 3위(한국 국회의장 격)에 오른 베이너는 정치적 양극화가 거세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프리덤코커스의 첫 번째 타깃으로 하원의장에서 낙마했다.

미 역사상 초유의 사태인 케빈 매카시 전 하원의장에 대한 해임결의안이 3일(현지 시간) 하원을 통과한 이후 야당 공화당 내 강경파 의원모임인 프리덤코커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40명 안팎에 불과한 소수 강경파 의원들이 하원의장 해임으로 미 의회 권력은 물론이고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감축을 요구하며 세계 최강국 미국의 외교 정책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금권정치에 물든 워싱턴의 기득권에서 벗어나 보수 유권자들의 풀뿌리 민심을 따르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프리덤코커스의 원칙주의적인 면모에 강경 보수 지지층들은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프리덤코커스를 두고 특유의 비타협적 노선으로 타협과 양보를 거부하면서 미국 정치를 끝없는 소모적인 갈등으로 이끌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일각에선 하원의장 해임 사태로 막강한 권력을 과시한 프리덤코커스가 본격적인 의회 권력 장악에 나서면서 미국 정치권에 큰 후폭풍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내년 미 대선에서 백악관 재입성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2기의 한 축으로 프리덤코커스와 손을 잡으면 이들의 영향력이 미국을 넘어 글로벌 무대로 본격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공화당 소속 하원의장 3명 낙마 주도

3일(현지 시간) 케빈 매카시 전 미국 하원의장이 자신에 대한 해임결의안이 가결된 후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빠져나오고 있다.워싱턴=AP 뉴시스 

“매카시는 적폐의 핵심이다.”

매카시 전 하원의장 해임을 주도한 공화당 소속 맷 게이츠 하원의원은 3일 하원 표결에서 해임결의안이 통과되자 이같이 말했다. 게이츠는 플로리다주(州) 상원의장을 지낸 부친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34세에 하원의원이 된 이른바 ‘금수저 정치인’이다. 하지만 음주운전 전력과 미성년자 성매매 의혹 등 각종 추문에 휩싸여 의회 윤리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등 입지가 좁아진 상황이다. 그런 그가 2014년부터 8년간 하원 원내대표로 공화당을 이끌어 온 9선의 거물 정치인 매카시를 ‘적폐’로 규정하며 하원의장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던 것은 프리덤코커스 소속이기 때문이다.

프리덤코커스는 공화당연구위원회(RSC)에서 갈라져 나온 계파다. 공화당 내 신보수주의 분파인 RSC가 외연을 확장하면서 중도 보수 의원들이 대거 유입되자 강경파 의원 9명이 ‘부패의 늪에서 물을 빼자(Drain the swamp)’라는 슬로건과 함께 별도 계파를 창설했다.

프리덤코커스는 출발부터 의회를 뒤흔들었다. 창립 멤버들은 공화당 지도부가 감세와 작은 정부 등 자신들의 정책 우선순위에 양보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비토(Veto·거부)권’을 행사하는 내부 규정을 세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회원들의 80% 이상이 지지하는 결정에 대해선 의원 개개인의 찬반과 관계없이 반드시 코커스의 결정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내부 규정을 만든 것이다.

회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오로지 초대를 통해서만 가입을 허가하는 비밀 결사적 성격을 띤 프리덤코커스는 통상 소속 의원 수가 많을수록 힘을 발휘하는 다른 의회 내 계파들과 달리 30, 40명 안팎의 소규모 회원으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공화당 지도부가 당론으로 특정 법안을 추진하더라도 프리덤코커스가 반대하면 어떠한 법안도 통과시킬 수 없게 된 것이다.

양당제가 고착된 미국에선 특정 정당이 435석의 하원 의석을 압도적으로 휩쓰는 경우가 많지 않다. 실제로 공화당의 압승으로 평가되는 2014년 중간선거에서도 공화당은 247석으로 민주당(188석)보다 59석을 더 차지하는 데 그쳤으며, 2016년 중간선거에선 47석, 지난해엔 9석 차이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30, 40명의 프리덤코커스 회원들이 결집하기만 하면 언제든 공화당 지도부가 결정한 당론을 뒤집을 수 있는 비토권을 갖게 되는 셈이다.

프리덤코커스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프리덤코커스가 무엇이든 반대하는 ‘비토크라시(vetocracy·반대를 위한 정치)’를 통해 공화당 지도부를 흔들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프리덤코커스는 창립 이후 공화당이 배출한 하원의장과 매번 충돌했다.

2015년에는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을 피하려고 오바마 행정부와 협상한 베이너 하원의장의 해임을 추진해 자진사퇴를 이끌었으며 당시 공화당 2인자로 차기 하원의장이 유력했던 매카시 전 의장을 당내 경선에서 낙마시켰다. 하원의장 바통을 받은 폴 라이언 전 의장은 프리덤코커스와 거듭된 신경전 끝에 2019년 정계를 은퇴했다. 찰리 덴트 전 하원의원은 뉴요커에 “하원 공화당은 타협과 협상을 중시하는 주류 보수파와 지도부에 반대표를 던지면서도 의회 파행은 우려하는 그룹, 그리고 모든 것에 반대표를 던지는 프리덤코커스 등 거부파(rejectionist)로 나뉘어졌다”고 지적했다.

● 주(州) 의회로 외연 확대 중

프리덤코커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변화를 맞았다. 프리덤코커스는 2016년 대선 경선 초기만 해도 공화당 주류의 외면을 받았던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나섰다. 프리덤코커스 창립 멤버인 믹 멀베이니 전 의원은 당시 “트럼프는 워싱턴을 뒤집어 놓기를 원한다”며 “우리도 같은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하고 공화당이 여당으로 바뀌면서 내분에 휩싸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바마케어’를 대체할 ‘트럼프케어’ 법안을 추진하자 프리덤코커스가 오바마케어 전면 폐지를 주장하며 트럼프 행정부에 반기를 든 것이다. 급기야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중간선거에서 그들과 싸울 것”이라며 프리덤코커스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저스틴 어마시 전 하원의원 등 재정적 보수주의 원칙을 고집한 일부 회원이 탈퇴하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프리덤코커스 소속 멀베이니와 마크 메도스 의원이 백악관 비서실장에 발탁되는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의 최대 우군으로 자리를 잡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프리덤코커스의 관계는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패배하면서 더욱 밀착했다. 회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부정 주장을 지지하고 공화당 지도부에 조 바이든 대통령의 탄핵 추진을 요구하는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호위병을 자처하고 나섰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 대선 출마를 본격화하면서 프리덤코커스 내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파가 모인 파벌이 생겨나기도 했다. 게이츠 의원을 비롯해 앤디 빅스, 스콧 페리, 폴 고사 의원 등이 프리덤코커스 내에서도 급진적인 강경파들의 모임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스쿼드’를 결성한 것이다. 3일 매카시 전 의장의 해임결의안에 찬성한 의원 8명의 대부분도 이들 ‘마가 스쿼드’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프리덤코커스는 2021년 12월에는 애리조나, 조지아, 펜실베이니아주 등 주요 스윙스테이트(swing state·격전지)를 중심으로 주(州) 의원들이 가입하는 프리덤코커스를 창설해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프리덤코커스의 전략을 주 의회에도 확산시켜 낙태권, 성소수자 정책 등 문화전쟁의 핵심 이슈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 트럼프와 손잡고 의회권력 장악 노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매카시 전 의장 해임으로 촉발된 의회 권력 재편 과정에서 프리덤코커스와 다시 손잡았다.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와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이 하원의장 후보로 나서자 프리덤코커스 초대 의장 출신인 조던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1·6 의사당 난입’ 사태 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조던 위원장은 물론이고 스컬리스 원내대표 역시 트럼프의 2020년 대선 부정선거 의혹을 지지해온 대표적인 친(親)트럼프 인사로 꼽힌다.

사실상 친트럼프 후보들 경쟁으로 치러진 공화당 하원의장 후보 경선에서는 스컬리스 원내대표가 113표를 얻어 99표를 얻은 조던 위원장을 제쳤다. 하지만 조던 위원장을 지지한 일부 의원이 경선 결과에 불복하면서 스컬리스 원내대표는 결국 선출된 지 하루 만인 12일 하원의장 후보에서 사퇴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스컬리스 원내대표가 혈액암 진단을 받은 점을 거론하며 “스컬리스는 암으로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며 “그런 그가 어떻게 하원의장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프리덤코커스 출신 조던 위원장을 하원의장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노골적으로 스컬리스 원내대표 사퇴를 압박한 셈이다. 조던 위원장은 러시아 스캔들과 1·6 의사당 난입 사태 등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가장 적극적으로 방어한 인물로 법사위원장을 맡은 이후엔 바이든 대통령 탄핵 조사를 주도했다.

프리덤코커스가 의회 내 이단아에서 공화당 리더십에 도전하는 주류 계파로 성장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당선되면 이들이 의회는 물론이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더욱 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프리덤코커스는 이미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재정적자 감축을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삭감 등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외교안보 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