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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폐어는 소와 형제간이다? 복잡한 분류학의 세계

입력 | 2023-10-14 01:40:00

체계화되며 미궁에 빠진 분류학… 최근 ‘물고기는 없다’는 결론까지
통용돼온 분류 방식에 의문 제기… 인식한 대로 분류하는 대안 소개
◇자연에 이름 붙이기/캐럴 계숙 윤 지음·정지인 옮김/440쪽·2만2000원·윌북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들. 분기학에 따르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의 저자는 “우리가 과학을 아무리 많이 필요로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물고기가 훨씬 더 필요하다”고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연어, 폐어, 소. 셋 중 어느 둘이 가까운 관계이고, 어느 것이 먼 관계일까.

일단 연어와 폐어는 비슷하게 생겼다. 물속에 살며 종일 헤엄친다. 비늘로 덮여 있고 알을 낳는다. 이에 비해 소는 풀밭에 산다. 네 다리가 있고, 새끼를 낳는다. 언뜻 연어와 폐어가 가깝고, 소는 먼 관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류학의 일종인 ‘분기학’의 관점에선 답이 다르다. 폐어는 육상동물의 폐와 같은 조직으로 호흡할 수 있고, 물 밖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음식물이 식도로 넘어갈 때 폐로 들어가지 않도록 돕는 후두개도 있다. 심장도 소와 비슷하게 생겼다. 진화 과정에서 연어가 먼저 다른 계통으로 갈라져 나갔고, 폐어가 다음에, 소가 마지막에 분기했기 때문이다. 분기학에 따르면 폐어와 소가 가까운 관계, 연어가 먼 관계인 셈이다.

연어, 폐어, 소(왼쪽부터)의 진화계통을 보여주는 그림. 연어로 이어지는 계통이 가장 먼저 분기하고 이후 폐어, 소가 각각 분기한다. 분기학에 따르면 연어는 폐어와 소의 먼 사촌이고, 폐어와 소는 형제자매에 가깝다. 윌북 제공 

생물의 이름과 질서를 연구하는 학문인 분류학을 다룬 교양과학서다. 분류학을 처음 정립한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기원전 322)다. 그는 모든 존재를 단계로 구분했다. 무생물-식물-연체동물-곤충-갑각류-포유류-인류로 정리한 것.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존재는 태어난 그대로 존재할 뿐이므로 각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이동할 수 없다고 믿었다.

스웨덴 생물학자 칼 폰 린네(1707∼1778)는 속명과 종명을 함께 쓰는 이명법(二名法)을 만들어 분류학을 체계화했다. 이명법은 각 생물에 두 라틴어로 된 이름을 붙여주는 방식이다. 인간 종을 호모사피엔스라고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1809∼1882)의 진화론 이후엔 분류학의 한 갈래로 분기학도 생겨났다. 종의 형질을 분석해 어떤 종들이 다른 종들보다 얼마나 ‘진화적’으로 가까운가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분류학이 체계화되면서 과학자들 사이에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생물이 하나의 분류가 되려면 한 조상에서 유래한 모든 후손을 포함해야 하고, 나머지는 하나도 포함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어를 어류로 분류하려면 연어의 조상에게 또 다른 후손이 없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데 그 후손엔 폐어뿐만 아니라 도마뱀, 거북이, 뱀, 곰, 호랑이, 토끼, 인간 등 다양한 동물이 포함되기 때문에 ‘어류’를 따로 분류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류가 없다니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한국계 미국인 과학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분류학 체계가 정말 맞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생명의 분류와 명명을 전문가들에게 맡겨 버렸다. 그들은 새들이 공룡이라는 소리까지 한다.”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건 동물이 세계를 감각으로 인지하는 ‘움벨트(Umwelt)’다. 흑백만 구별하는 개는 냄새로 세상을 인지한다. 벌은 인간이 보지 못하는 자외선으로 길을 찾는다. 인간도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으로 생물을 분류하면 된다는 것이다.

최근 심리학자들은 어린아이가 생물을 인지하는 방식으로 생물을 분류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처럼 조만간 새로운 분류학 체계가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비교적 생소한 분야를 다뤄 읽기는 만만치 않지만 과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사해 흥미롭다. 2021년 국내에 출간돼 큰 주목을 받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출판)의 저자 룰루 밀러는 “이 책보다 나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은 없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