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로저 스크루턴 지음·노정태 옮김/236쪽·2만2000원·21세기북스
인간의 문화를 진화의 산물로 설명하려는 연구들이 적지 않다. 인류가 이렇게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진화에서 그것이 이득이 됐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수긍이 갈 때도 있지만 다소 고개를 갸웃하게 될 때도 많다. 인간이 놀랄 만한 이타성을 보이고, 고도의 사회를 구성하며, 수많은 위대한 예술작품을 창조하고, 영성(靈性)과 신비에 빠져드는 것 모두가 단지 진화에서 유리했기 때문일까.
이 같은 의문을 품어본 적 있다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책은 영국의 대표적 지성으로 손꼽히며, 런던대 버크벡칼리지 교수로 미학을 가르쳤던 저자(1944∼2020)가 2013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했던 특별강연을 담고 있다.
저자는 과학만이 세계를 해석할 특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과학은 인간의 근본적인 본성과 도덕성을 제대로 다루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그저 유전자의 복잡한 부산물이라고 봤다. 그와 같은 사회생물학의 입장에선 “도덕성은 인간 유전 물질을 손상 없이 유지하는 것 외의 다른 명백한 궁극적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우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우리가 무엇이었느냐’로 치환할 수 있다고 전제한 채, 인간의 조건을 단순한 원형으로 끌어내기 위해 생물학을 사용했을 뿐”이라고 비판한다.
현대 윤리학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다섯 사람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한가’와 같은 딜레마에 사로잡혀 도덕적 판단을 허깨비로 만들었다는 것. 영미 사회철학에 대해서도 사회가 ‘계약’으로 형성됐다고 이해해 도덕에 대한 냉소로 빠져들 길을 열어놨다고 비판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