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의 기원서 아랍 문화 만나고, 800년 전 공책엔 아이의 낙서가 현재 우리가 누리며 살고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의 역사 고고학으로 흥미롭게 풀어내 ◇세상 모든 것의 기원: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강인욱 지음·352쪽·2만 원·흐름출판
러시아 노브고로드에서 발굴된 800년 전 러시아 소년 ‘온핌’의 낙서 뭉치. 저자는 “유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고고학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의미 있게 끌어내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흐름출판 제공
어릴 적 식당에서 안주로 나온 돼지머리 고기를 보며 ‘제일 처음 돼지머리를 먹을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굴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을 텐데…’ 하며. 살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하게 되는 ‘이게 어디서 유래한 거지?’라는 상상. 경희대 사학과 교수가 이런 의문을 일상생활과 역사 속 각종 사례를 대상으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대중 술인 소주는 어떻게 유래됐을까. 저자는 증류주를 만드는 기술은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됐기 때문에 한마디로 기원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중국 지린성에서 발굴된 거란 시대(10, 11세기)의 술을 빚는 솥과 쟁반 등을 근거로 기호품으로서의 소주는 거란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한다. 그 배경에는 유목민이라는 그들의 생활 방식과 만주라는 지리적 환경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증류주는 도수가 높아 적은 양으로도 충분히 취할 수 있어 유목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는 휴대하기 편리한 술이었고, 겨울이 긴 만주는 증류 과정에서 냉각을 위해 필요한 얼음을 구하기 쉬운 곳이었다. 또 농사가 발달해 누룩 같은 술 재료를 구하기도 쉬운, 소주를 대량 생산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후에 몽골 제국을 통해 전 세계로 퍼졌는데, 이는 우리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경상도 방언에 있는 ‘아라기’란 말은 술 또는 술지게미를 가리킨다. ‘아라기’는 아랍 지역의 증류 시설인 ‘알렘빅’(아랍어로 ‘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증류 과정에서 술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모습이 마치 땀과 같았기 때문이다.
전남 영암군의 고인돌.
수천, 수만 년 전 유물 한 조각에 남아있는, 그 옛날 사람들이 아파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소망했던 모습을 읽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내 주변, 사랑하는 대상들을 돌아보게 하니 참 신통하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