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인공 저수지인 의림지. 한국의 농경문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충북 제천에는 용이 빚어낸 깊고도 넓은 연못들이 있다. 용의 머리를 닮아 용두산(龍頭山·871m)이라고 불리는 산에서 흘러내린 저수지인 의림지와 비룡담이다. 의림지는 우리나라 현존 최고(最古)의 저수지이고, 용이 승천하는 기세인 비룡담은 ‘한방 치유 숲길’로 조성된 이후 주·야간 즐겨 찾는 힐링 명소로 인기가 높다. 또 그 아래쪽 청전뜰에서는 가을의 황금빛 향연(농경문화예술제)이 펼쳐지고 있다. 용두산과 짝이 되는 의림지 남쪽의 비봉산(飛鳳山·531m)에서는 봉황의 날개를 탄 듯한 기분으로 청풍호의 이국적 가을 풍경도 즐길 수 있다.》
● 의림지의 황금빛 농경 축제
‘제2의 의림지’로 불리는 제천 비룡담 저수지. 나무 덱으로 조성한 ‘물안개길’을 걷다 보면 인공의 성 구조물 등 아름다운 포토존을 만나게 된다.
한방 치유 숲길 중 물안개길은 비룡담에서 출발해 한방 생태숲을 돌아 다시 비룡담으로 돌아오는 덱길 코스다. 보행 난도가 최저 수준으로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다. 이 코스는 인공으로 만든 성 구조물 포토존으로도 유명하다. 낮에는 진초록 물빛의 비룡담에 반영(反影)으로 비치는 성 모습도 아름답거니와 밤엔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이국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비룡’이란 이름처럼 승천하는 용이 불길을 뿜어내는 듯한 분위기다.
의림지 내 용추폭포. 약 30m 높이에서 쏟아지는 물 소리가 마치 용울음처럼 들린다고 해서 용폭포라고 불리는 이곳엔 투명 유리전망대가 설치돼 있어서 폭포 위를 걸어가는 듯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의림지 농경문화예술제의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옛 탈곡기 체험 행사. 제천시 제공
농경문화를 체험한 후 의림지 역사박물관도 들러볼 만하다. 의림지의 역사와 구조, 생태 등을 알려주는 전문박물관이다. 현재 이곳에서는 ‘비손: 비나이다, 비나이다’라는 기획전시가 내년 1월 11일까지 열리고 있다. ‘비손’은 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병이 낫거나 소원을 이루게 해 달라고 비는 행위다.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우리나라 기복신앙의 면면을 구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번 전시에서는 운세와 길일을 점치는 책, 길상과 벽사 무늬가 있는 각종 생활용품, 가정신을 모신 단지와 항아리, 충북도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티별신제 옷과 도구 등 100여 점의 유물도 선보이고 있다.
● 청풍호가 빚어낸 녹색 선경
용두산의 용이 토해놓은 곳이 의림지라면, 봉황의 시선으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비봉산 전망대다. 비봉산은 가운데 솟은 봉우리가 봉황의 머리, 양쪽으로 뻗은 능선이 날개에 해당해 봉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양새를 한 산이다. 봉황의 머리인 정상까지는 케이블카와 모노레일이 설치돼 있어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비봉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청풍호의 절경. 악어처럼 생겼다고 해서 악어섬(가운데)이라고 불리는 산자락과 함께 이국적 호반 마을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벽루는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와 함께 조선의 3대 누각으로 꼽히는 건물이다.
북두칠성과 북극성 별자리가 새겨진 황석리 고인돌.
● 비보 풍수의 현장
신라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의 전설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덕주사로 가는 길목에는 기이한 모양의 구층석탑이 서 있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이다. 덕주사에서 약 2km 떨어진 산길 외딴곳에 있어서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다. 네 마리 사자가 호위하듯 서 있고 가운데 두건 쓴 부처상이 인상적인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
석탑에는 고려 현종 13년(1022년)에 ‘부처의 힘을 빌려 적을 물리치려는 소망을 담아 9층의 탑을 세운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석탑은 이곳 터의 거센 기운을 진압하기 위한 비보 풍수적 특징도 가지고 있다. 비보 풍수는 기운이 너무 거세거나 반대로 너무 빈약한 곳을 탑이나 돌 등으로 보완하는 장치를 가리킨다.
월악산자락 덕주사 입구에 있는 3기의 남근석.
제천 여행의 별미는 미식이다. 제천은 충청·강원·경상 3도의 접경지인 만큼 음식문화가 발달돼 있다. 이 중 조선시대 3대 약령시 중 하나라는 자부심을 살려 ‘약채락(藥菜樂)’이라는 향토음식 브랜드가 주목을 끌고 있다. ‘약이 되는 음식을 먹으니 즐겁다’는 뜻의 약채락은 황기를 넣은 약간장, 당귀를 사용한 약고추장, 뽕잎으로 만든 약초소금 등 ‘약념(藥念)’ 이미지를 담은 양념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외에 제천시가 인증한 ‘제천맛집’ 등 식도락에 진심인 식당들을 골라 ‘음식 비보’를 즐길 수 있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