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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고 있는 박서보 화백…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입력 | 2023-10-14 21:40:00


‘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이 14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2세.

박 화백은 지난 2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 왔었다.

14일 오전 뉴시스와 통화한 박 화백의 며느리인 김영림 기지재단 이사에 따르면 박 화백은 지난 목요일(12일) 몸이 허약해져서 은평구 성모병원에 입원중이었다. 저녁 6시30분 정도에 의식을 잃었고 몇차례 심폐소생술을 했다. 병원에서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김 이사는 병원에서도 박 화백이 “작업할게 많다‘며 배접하라고 한 당부가 마지막 말씀이 되었다”며 “어머니와 함께 ’배접해놓은 게 많은데, 또 그런다. 그림 욕심 많아서 빨리 퇴원하셔야겠다‘고 했는데…”라며 슬픔을 전했다.

2년전인 2021년 고인은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열정을 불태웠다. 박화백은 이중섭·박수근·김환기 등 ’죽은 화가‘와 달리 살아 생전 화가의 기쁨을 누린 화가다. 지난 10여 년 전 팔순에 단색화 거장, 최고의 화가로 등극하며 승승장구 했다. 일본 유학파 등 이전 세대와 달리 ’토종 미술인‘인 그의 그림 ’묘법‘은 마법이 됐다 ’장르가 박서보‘라 할 정도로 독보적인 작품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끝까지 살아남아 단색화를 일궈내고 세계화시켰다.”

고인은 1931년 경북 예천에서 출생,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56년 김영환, 김충선, 문우식과 함께 ’4인전‘을 통해 반국전 선언을 발표, 앵포르멜 기수로 화단의 스타작가였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1962-1997) 및 학장(1986-1990)을 역임했다. 2000년 명예교수로 임명되었으며 한국미술협회 이사장(1977-1980) 및 고문(1980)으로 활동했다. 1984년 국민훈장 석류장, 1994년 옥관 문화훈장, 2011년 은관 문화훈장, 2021년 금관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도쿄도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구겐하임 아부다비, 홍콩 M+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나는 그림 그리기가 수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색칠과 선 긋기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내는 깊은 맛은 서양인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에요. 누구도 따라못할 밀도감을 담으려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생전 박 화백 인터뷰중)

수행하듯 반복해서 선을 긋는 ’묘법은 종이 대신 한지를 사용한 화면 안에 반복적인 선 긋는 행위를 통해 고도의 절제된 세계를 표현한다. ‘묘법’은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로 부상, 세계 미술계의 러브콜을 받았다. 1976년 작 ‘묘법 No. 37-75-76′이 2018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00만달러(약 25억원), 지난 10월5일홍콩 소더비경매에서 묘법 NO 37-75-76이 2041만홍콩달러(한화 약 35억원)에 팔려 최고가를 경신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