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7일 아침. 경기 부천시 하늘에 조총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원미경찰서 소속 고 박찬준 경위의 영결식이 마무리에 접어들 때였다. 젊은 경찰관이었다. 35세. 원미초교, 부천중, 원미고를 졸업한 그는 대학 졸업 후 경찰이 됐다. 다수의 범인 검거 공적으로 경찰청장 수여 등 10여 회 표창을 받은 그는 10년째 고향에서 가족과 이웃을 지켜 왔다.
3일 새벽, 원미산 정상 팔각정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을 살피던 박 경위는 2층에서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내가 아이를 품은 지 5개월이 되는 달이었다. 경기남부경찰청장(葬) 영결식에는 경찰 고위 지휘부와 지역 국회의원 등 많은 이가 참석했다. 책임 있는 위치에서 그의 죽음을 책임질 수 없는 이들의 헌화와 분향이 이어졌지만 유가족과 남은 동료들의 눈물에는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어 보였다.
그에게 경찰 업무를 배운 정미수 순경은 준비한 고별사를 차분하게 읽다 ‘다음 생에는 저의 후배로 만나자. 당신처럼 좋은 선배가 되어주겠다’며 결국 오열했다. 사고 당시 무전을 듣고 다친 사람이 누구냐고 박 경위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경찰 동기 김용민 경사는 영정 앞에 하릴없이 무너졌다. 그는 이제 동기의 답장을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됐다. 영결식이 끝난 뒤, 정복 차림의 동료 경찰관들은 도열하여 떠나는 운구차에 거수경례를 올렸다. 박 경위는 이날 오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다음 날 나는 영결식에 앉아 그가 선택한 직업의 내재된 위험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떠올리며 홀로 무참했다. 그리고 올 3월, 전북 김제 주택 화재로 순직한 성공일 소방관의 사고가 겹쳐졌다. “안에 사람이 있어요” 말 한마디에 한시도 진입을 망설이지 않은 젊은 소방관의 숙명을 이해하고, 마지막까지 탈출구를 찾아 내뻗은 그의 손이 선명하다. 나는 결국 그 무게에 대한 책임으로 내려놓음이라는 답을 적었다. 모든 경찰관과 소방관, 제복 공직자들은 그 긍지와 사명감을 공유한다. 제복을 입고 기꺼이 국가의 손이 돼, 국민 안위를 지키는 조직 본연의 사명과 책임을 현장에서 몸을 던져 다하는 이들. 젊은 경찰관의 죽음이 너무도 비통하다. 젊은 소방관의 죽음은 나의 삶을 결정했다. 죽지 않았다면, 그들이 평생 지켜내고 구할 수 있는 국민들이 많다는 걸 잘 알기에 그 젊음과 가능성들이 너무도 아까워 나는 이 무참함이 견딜 수 없다.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 대한민국 경찰관 고 박찬준 경위. 젊었던 그는 10년을 경찰 현장에서 보냈고, 갑장인 나는 10년을 소방 현장에서 보냈다. 살아남은 나는 감히 이 글을 그의 영전에 올린다.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