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재취업, 대부분 2년 못 채우고 퇴사 낯선 환경과 사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 섣부른 기대로 조급하게 덤비면 실패 재취업도 준비 필요… 재정비, 도약 기회로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선배의 말을 정리하면 선배는 퇴직 후 10개의 직업을 가졌다고 했다. 컨설팅부터 시작해서 생활용품 판매업, 발레파킹 아르바이트 등 그 종류가 다양해 열거하기에도 헷갈리는 듯 보였다. 스스로도 겸연쩍은지 이야기하는 중간에 해보았던 일들을 모두 다 말하냐고 묻기까지 했다. 왜 그리 여러 가지 일을 했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맘처럼 안 됐으니까.” 그런 선배의 답변에서 선배의 모습을 변하게 만든 또 다른 원인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atg1012@donga.com
선배는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시스템이라고 했다. 처음이라 낯설기도 하고, 이전에 근무했던 회사와 비교하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도 않아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필요한 영역은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부족한 채 하기에는 자신의 힘에 부쳤다고 했다. 같은 회사 내 다른 부서로 이동하더라도 상당 기간 적응하기가 어려운데 생소한 업종, 낯선 회사, 익숙지 않은 환경이라면 더욱 그랬을 듯했다. 여기에 잘해야겠다는 부담까지 더해져 얼마나 힘겨웠을까. 선배가 느꼈을 중압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 마음도 무거워졌다.
“사람마저도 다르더라.” 선배의 표정이 말을 이어갈수록 어둡게 변해 갔다. 선배는 사람들이 본인에게 벽을 치는 듯 보였다고 했다. 먼저 인사를 건네도 시큰둥했고, 업무 외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마도 본인이 지인 소개로 들어간 탓일 거라고 하는데, 들으려니 새 직장을 다니는 동안 예민하게 주변을 살폈을 선배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그런 선배의 생각이 오해일 수 있다고 여겨지면서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만만치 않았던 것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나왔어.”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선배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유를 묻자 그저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쪽으로 흘러갔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1년 가까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본인도 지쳐갔고, 회사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점차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덧붙였다. 퇴직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들어간 회사, 특히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에서 자신에게 주어졌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반복되는 실패로 상황에 떠밀려 눈을 낮추기만도 위축됐을 텐데, 결국 마음까지 다친 선배가 안타까웠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지냈어?”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선배가 이번엔 나의 근황을 물었다. 순간 잊고 있던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표는 처음 약속과는 달리 내가 향후 제품을 판매할 판로부터 뚫어 왔으면 하는 눈치였다. 대기업 출신이라는 내 배경을 활용하고 싶은 듯 보였다. 그런 대표가 못마땅하긴 해도 우선은 바탕을 잘 갖추어 신뢰부터 쌓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보여주는 결과가 없으니 나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그러다 대표와 의견 차이가 빚어졌고, 그 끝에 대표는 나에게 회사를 떠나 달라고 말했다. 결국, 재기를 꿈꾸며 다시 도전한 그곳에서 나는 바라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재취업을 하기 전에 어떤 준비를 했을까. 연애로 치면 오랜 인연과 이별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과 같은 상황인데, 나는 어떤 마음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을까. 돌이켜보면 당시에 나는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내가 일할 회사가 어떤 형편인지, 내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오직 두 번째 세상에 안착만을 바라며 조급하게 덤벼들었다. 그 결과로 내게 남은 것은 패배감이었고, 그 패배감은 나의 한계와 세상의 벽을 느끼게 하여 오랜 낙담에 갇혀 있게 만들었다.
만약 내가 다시 근무할 곳이 이전 직장과 전혀 다르다는 가정하에, 섣부른 기대보다 오히려 필요한 준비를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 같았다. 우선은 불편한 감정으로 회사와 결별하지는 않았을 테고, 유독 퇴직자에게 적용되는 높은 잣대도 넘어섰을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를 떠난 후에는 서로 맞지 않았을 뿐이라 생각하며, 나를 재정비하는 기회로 삼아 이전보다 한 발 더 나아갔을 것이다. 선배와 나, 어렵게 들어간 두 번째 회사를 나온 이유가 표면적으로는 달라 보였지만 결국은 한 뿌리인 것 같았다.
생각을 멈추고 선배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기운 내며 살아가는 듯 보여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첫 번째 직장과 차원이 다른 두 번째 직장, 재취업이 선배뿐 아니라 퇴직자 모두에게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