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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통합할 수 있을까[김지현의 정치언락]

입력 | 2023-10-16 14:00:00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운데)가 10월 9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발산역 부근 공원에서 열린 진교훈 강서구청장 후보 유세에 지원 나와 당 소속 의원들과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왼쪽 홍익표 원내대표와 오른쪽 박찬대 최고위원도 이 대표의 등장에 환하게 웃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① 우리가 보궐선거 이겨서 솔직히 너무 신나지만 일단 표정 관리는 할게.
② 이참에 비명(비이재명계) ‘가결파’도 너무 처리하고 싶지만, 이재명 대표가 멋지게 복귀해야 하니 일단 ‘통합’은 강조할게.
③ 그래도 당에 절차라는 게 있으니 ‘적극적 가결파’는 징계 논의해야지? 나머지들은 특별히 살려는 드릴게.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압승한 이후 더불어민주당 친명(친이재명)계 지도부 내에서 감지되는 분위기입니다.

11일 밤 서울 강서구 마곡동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후보 캠프사무실에서 진 후보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진 후보 부부와 민주당 지도부 인사들이 함께 환호하며 인사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17.15%포인트 격차의 큰 승리였지만 민주당은 당선 발표가 난 직후부터 “민주당의 승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의 각성과 민생 회복을 명하는 국민의 매서운 회초리”(이재명 대표)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더욱 겸손하고 치열한 자세로 민생을 챙기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권칠승 수석대변인)라며 몸을 바짝 낮췄죠.

홍익표 원내대표도 다음 날 오전부터 당 회의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민주당에 대한 신뢰라기보다는 좀 제대로 하라는 기회를 주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내부 단속’에 나섰습니다. 내년 총선까지 이 기세를 잘 끌고 가려면 민주당 특유의 ‘오만’ 프레임에 갇혀선 안 된다는 계산이겠죠.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역시 ‘선거전문정당’답게 이기자마자 바로 부자가 몸조심하는 모드로 들어갔다”고 평가했습니다. 잘하는 건 잘하는 거라고 인정해야겠죠. 민주당이 자신들도 반성하고 더욱 민생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을 얼마나 행동으로도 옮기는지 지켜보겠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9일 단식 치료 후 퇴원하고 첫 일정으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진교훈 후보 유세 현장을 찾아 지지 발언을 마친 뒤 지지자들에게 하트를 그리며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진 후보.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당 외부로는 그렇게 ‘낮은 자세’와 ‘겸손’ 모드를 계속 유지하면 될 것이고, 남은 과제는 당내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냐일 겁니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 이후 당내 친명, 비명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죠. 단식 투쟁 중 입원했다가 이르면 이번 주, 약 한 달 만에 당무에 공식 복귀한다는 이 대표로선 ‘통합’의 깃발을 내걸고 돌아오고 싶을 겁니다. 그래야 리더십이 있어 보일 테니까요.

실제 이 대표는 퇴원하던 날 진교훈 강서구청장 당시 후보의 유세 현장에 지원을 나가서도 “우리 안의 작은 차이를 넘어서서 부족하고 억울한 게 있더라도 잠시 제쳐 두고 저 거대한 장벽을 우리 함께 손잡고 넘어가자”며 “서로 손잡고 단결해서 단합하자”고 했죠. ‘우리 안의 작은 차이를 넘어 단합하자’는 메시지는 이 대표가 직접 작성했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강서구청장 선거 승리 직후 낸 메시지에도 “우리 안의 작은 차이를 넘어 단합하자”고 썼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명계로선 ‘눈엣가시’ 같은 강성 비명계를 이번 가결 사태를 명분 삼아 손을 좀 보고 싶을 겁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외상값은 받아야 한다’고도 했었죠. 그래서인지 친명 지도부가 이 대표 복귀에 앞서 미리 ‘조건부 징계’ 가능성을 꺼내 든 모습입니다.

“(이 대표가 복귀한 뒤) 가결이냐 부결이냐를 갖고 징계를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략) 다만 해당(害黨) 행위에 대한 부분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어 그에 대한 (징계) 논의는 가능하다.”(장경태 최고위원)

“가결한 의원들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지금은 서로 소통하면서 해야 할 일을 뚜벅뚜벅 하는 게 맞다. (중략) 가결한 의원 전체(의 징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갔다. (중략) 당원 5만 명이 청원한 경우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보고를 받고 절차상 진행해 나갈 내용이다.” (서영교 최고위원)

가결표를 던진 의원 전체에 대한 징계 가능성은 일축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가결을 주장하고 다니는 등 ‘당의 단합 저해 및 품위 손상’으로 볼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선 징계 가능성을 열어 둔 거죠. 특히 당 국민응답센터에 “가결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며 올라온 강성 비명계 이상민 김종민 이원욱 설훈 조응천 의원에 대한 징계 요구 청원을 거듭 언급한 것이 눈에 띕니다. 해당 청원은 당 지도부의 공식 답변 기준인 5만 명을 넘어선 상태입니다. 친명 지도부로선 ‘절차’와 ‘원칙’에 따른 것임을 강조하며 당내 법원 역할을 하는 윤리심판원 회부 등의 방안을 고심하기 좋은 명분이 될 듯합니다. 참고로 윤리심판원장은 당 대표가 임명하며, 현재 친명 성향의 위철환 변호사가 맡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징계’를 요구하기 어려운 현역 의원들을 대신해 원외의 강성 친명 조직도 ‘붐업’ 역할을 해주는 모습입니다.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13일 입장문을 내고 “통합과 봉합은 다르다”며 “해당 행위자들에 대한 분명한 징계만이 진정한 당의 통합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 역시 ‘청원 5인방’을 콕 찍으며 “당을 윤석열 정권에 팔아넘기려한 이들에 대한 아무런 조치 없이 넘어간다면, 이런 기회주의적 행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설훈, 이상민,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 5인에 대한 분명하고 단호한 징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한 민주당 보좌관은 “친명 원외 조직이 당내 통합 가능성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혁신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왜 친명 원외 인사 본인들은 험지에 출마하지 않고 민주당 텃밭인 ‘비명계 수박’들의 지역구만 노리는가”라고 꼬집더군요. 적어도 ‘수박 타령’하면서 원내에 입성하려는 건 너무 비겁하다는 거죠.

어쨌든 당 지도부가 이렇듯 ‘당원들의 요구’라며 절차에 따라 일부 ‘공개적으로 가결을 공언한’ 의원들에 대해서만 징계 절차에 돌입한다면 결과적으로는 비명계 내에서도 분열이 불가피할 겁니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에서 당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에게 공천을 줄 수 없다”고 해서 당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죠. 마침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도 12일 MBC라디오에서 “(가결로) 징계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다만 지속적으로 ‘당 대표 사퇴’, ‘분당’, ‘당 대표 사당화’ 등 근거 없는 비판과 당의 단합 및 정상적인 당무집행을 저해하는 행동에 대해선 적절한 징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가결파 의원들에게 ‘이번은 봐줄 테니, 앞으로는 적당히 하라’는 경고로 느껴집니다. 당장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기 목숨줄이 달린 마당에 이런 메시지를 듣고도 당 내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할 말을 할 수 있는 ‘용자’는 많지는 않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침묵하는 다수’가 늘고, 자연스레 친명이 말하는 ‘통합’이 이뤄지겠죠.

한 야권 관계자는 “징계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그게 무슨 통합이냐”라며 “친명계의 일방적인 ‘점령적 통합’이고, 아주 좋게 말해도 총선 공천을 앞둔 ‘배타적 통합’”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국민통합은 전두환도 외쳤었다”라며 “친명이라고 못할까”라고 했습니다. 과연 ‘이재명식 통합’은 어떤 그림일지 기대가 됩니다.

PS. 지난주 ‘0선 출신’들이 망쳐버린 한국 정치(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1008/121568515/1)에는 여야 양쪽의 ‘강성’ 지지층이 ‘매운 맛’ 댓글을 많이 달아주셨습니다.

“기자는 똥과 된장은 구별할 수 있는 건가? 윤석열만 욕하기엔 쫄은 건가?”
“태극기들은 그저 윤도리 비판이 거슬려서 쌍심지키고 생날지들을 떠는구나”
“돼먹지 못한 기자X야 니가뭔데 윤대통령님을 지도자감이 아니라고 평하해…기자 나부랭이 주제에 니가 뭐 대단한줄 알아”
“기자님 정치를 나락으로 보낸것은 이죄명과 개딸들,친명계 국개,처럼회 국개들이다!!!”

있는 그대로 느낌을 전달하고자 과격한 표현을 (욕설만 제외하고) 그대로 싣습니다. 지난주 칼럼에도 언급했지만, 여야 간 극한 대립 속에 어느덧 양쪽 모두 남은 건 30% 안팎의 강성 지지층뿐이라는 게 이젠 댓글만 봐도 실감이 납니다. 한국 정치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