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두번째 장편 ‘파견자들’ 곰팡이도 미로 푼다는 사실에 주목 “한국SF 영화-드라마 진출에 감사”
김초엽 작가는 출판계 불황에 대한 물음에 “요즘 작가들의 경쟁 대상은 넷플릭스가 된 것 같다”며 “재밌고 대중적인 작품이 독자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뉴시스
인간을 미치게 하는 ‘균’이 지상에 가득 퍼진 어느 미래. 사람들은 어둡고 퀴퀴한 지하 도시에서 연명한다. 하지만 태린은 지상을 동경한다. 해 질 무렵이면 노을이 일렁이고, 밤엔 하늘에 별들이 가득한 지상으로 나가고 싶어 지상을 탐험하는 ‘파견자’ 시험에 응시한다.
최종 시험을 앞둔 어느 날 태린에게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는 태린에게 “너는 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타박하고, “이제는 모든 걸 함께 잊어버리자”고 제안한다. 태린은 균에 감염돼 미쳐버린 걸까. 아니면 태린에게 진실을 알려주려는 것일까. 13일 출간된 김초엽 작가(30)의 두 번째 장편소설 ‘파견자들’(퍼블리온)은 곰팡이 같은 균이 세상을 지배한 미래를 그린다.
김 작가는 16일 서울 강남구 최인아책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해서 많이 써왔지만 균을 다루는 건 엄두를 못 냈다”며 웃었다. 포스텍(포항공대)에서 화학 학사,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은 과학도 출신 공상과학(SF) 작가이지만 균을 공부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작은 것들이…’에 따르면 곰팡이는 미로를 피해 균사를 뻗는다면서 “곰팡이들은 뇌도 없고 지능도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뇌가 있는 인간처럼 미로 문제를 해결할까 궁금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인간의 시점으로만 평생을 살아가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한계가 있다”며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이 어떻게 세계를 감각하고, 인식하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신간의 설정은 식물이 지배한 지구에 살아가는 인간을 그려 15만 부가 팔린 그의 첫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2021년·자이언트북스)을 떠올리게 한다. “문학은 우리가 개인의 관점의 한계를 벗어나서 다른 세상과 타인을 경험하게 해 주잖아요. 동물, 생물뿐 아니라 로봇, 인공지능(AI), 외계인의 삶을 상상하면서 ‘인지’의 범위를 넓히고 싶어요.”
2017년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그는 2019년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등을 통해 한국 SF의 지평을 넓혀 왔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김보영, 정보라 작가처럼 한국에서 활동하던 SF 작가들의 작품이 영어로 출간되면서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 SF가 지금까지 제대로 잘해 온 것”이라며 “(한국 SF를 바탕으로) 영화·드라마가 만들어지는 데 대해 SF 작가로서 감사한 기회라 생각한다”고 했다.
다음 계획에 관해선 “일단 올해는 SF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비디오게임에 대한 에세이를 쓸 것 같다”며 “내년이 돼야 다른 작품을 쓸 씨앗이 생겨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