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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소박하지만 독창적… ‘하나의 장르’가 된 장욱진[미술을 읽다]

입력 | 2023-10-16 23:33:00

화가 장욱진(1917∼1990)이 평생에 걸쳐 그린 가족 그림의 전범이라 할 수 있는 1955년 작 ‘가족’. 이 그림은 1964년 그의 첫 개인전에서 일본인 시오자와 사다오에게 팔린 뒤로 행방이 묘연했다. 이번 전시를 앞두고 시오자와의 아들 부부를 설득해 부친의 낡은 창고를 뒤진 끝에 찾았고, 해당 그림은 59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이 성황리에 전시 중이다. 전시 제목처럼 작품을 그야말로 ‘진지하게’ 감상하는 관객의 모습에서 “난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나를 발산한다”고 했던 그의 ‘진솔한 자기 고백’이 제대로 통한 것 같아 고무적이다.

이번 전시에서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작품은 지난 60년간 오직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 몇의 기억 속에서 구전(口傳)되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발굴된 ‘가족’이다. 장욱진이 항상 머리맡에 걸어둘 만큼 애착을 가졌던 작품이자 생애 처음으로 돈을 받고 판매한 작품이다. 아쉬운 마음에 똑같은 그림을 다시 그리기도 했다(1972년작 ‘가족도’·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소장). 부인 고 이순경 여사도 생전에 그림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고, 장녀 장경수는 이 작품을 장욱진의 대표작으로 꼽은 바 있다.

어쩌면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장욱진 회고전이 마지막 기회일지 몰랐다. 작품은 1964년 작가의 첫 개인전을 찾은 시오자와 사다오 씨가 구입해 일본으로 가져갔지만 그가 작품의 행방을 알리지 않은 채 사망해 작품 소재가 불분명했다. 이후 소장가의 아들인 시오자와 슌이치 씨도 “그림을 못 찾겠다”고 말하며 작품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방문을 거듭 거절했지만 이번에 겨우 허가했다.

일본 오사카 근교 소장가의 오래된 아틀리에는 수풀이 무성해 낫으로 길을 만들며 들어가야 했다. 전기도 끊기고 먼지도 수북한 아틀리에 안에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포기해야 하나’ 하는 순간 다락방 낡은 벽장에 눈길이 갔다. 겨우 비집고 들어간 벽장 안, 잔뜩 먼지를 뒤집어쓴 물건들 사이로 비스듬히 꽂혀 있는 작은 액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손바닥만 한 작은 그림 한가운데에 1955년이란 작품의 제작 연도와 함께 장욱진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60년 동안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던 ‘가족’이 다시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시오자와 부부뿐 아니라 미술품 운송회사 직원들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발견된 작품은 평생 가족 이미지를 그린 장욱진 가족도의 전범(典範)이라는 측면에서 미술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대상이 군더더기 없이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장욱진의 조형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의 가족도 중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와 아이들만이 함께 그려진 유일한 사례라는 점도 의미 깊다.

장욱진(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의 가족사진.

그는 가족, 까치 등 소박하고 서정적인 소재들을 평생 그렸다. ‘지속성’과 ‘일관성’은 장욱진 그림의 주요한 특징이다. 큰 키, 헐렁한 옷, 도인 같은 인상 탓에 마음 내키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그림을 그린 화가다. 학창 시절 여러 그림대회에서 수상하며 전도유망한 미술학도로 일찍이 주목받았고,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등과 함께 서양화단 2세대, 모더니스트 1세대로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양식을 구축했다.

장욱진은 생전에 “나는 심플하다”는 말을 진언처럼 되뇌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낸 ‘심플’해 보이는 화면에는 결코 단순하지 않은 풍부한 서술성이 함축되어 있다. 가볍다면 한없이 가벼울 수도, 어렵다면 한없이 어려울 수 있는 그림이 장욱진 작품이다.

1958년 작 ‘까치’. 까치는 장욱진의 페르소나(분신)라 할 정도로 많은 작품에 등장한다. 장욱진은 까치, 가족, 나무 등 소박하고 한국적인 소재를 이용해 단순하지만 짜임새 있는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2전시실 초입에 전시된 까치 그림 세 점을 바라보던 관람객 한 분이 다가와 각 그림에 등장하는 달이 그믐달인지, 초승달인지 물었다. 정말 1958년작 까치와 1961년작 까치 그림 속 달의 눈썹 방향이 다르다. 대충 쓱쓱 그린 듯 보이지만 점 하나, 선 하나 허투루 그리는 법 없이 조형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했던 장욱진 화가이기에 절대로 그냥 그린 것은 아닐 것이었다. 실제 그믐달이 그려진 1958년작 ‘까치’와 1961년작 ‘새와 나무’는 마치 동이 트기 전 어스름히 해가 밝아오는 새벽녘의 모습처럼 보이는데 나무의 형상을 통해 날카로운 펜촉으로 긁어내거나 밝고 깊은 푸른 새벽을 암시하는 색조를 사용하여 설화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1961년작 ‘까치’의 경우 유화 물감을 바르고 닦는 과정에서 번지고 스며드는 효과가 그림의 시적 분위기를 더해주며, 까치와 나무가 마치 기호화된 상형문자처럼 병렬로 배치되어 있다. 음력 3∼4일경 뜨는 초승달은 나무의 형태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신록이 소록소록 살아나듯 나무의 형태를 새싹처럼 묘사했다.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의 풍부한 해석은 다시금 장욱진의 그림이 ‘심플하지만 심플하지 않은 그림’임을 상기하게 한다. BTS의 리더이자 작품 6점을 선뜻 출품한 소장가 RM도 1989년작 ‘노인’을 보며 “돌아가시기 일 년 전에 그리신 작품이라 그런지 왼쪽 위에 그려진 초승달이 마치 사후 세계로 가는 문의 입구를 묘사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 어떤 장욱진 관련 논문과 책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해석이었다.

장욱진은 재료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움과 하나의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창작 태도를 보였다. 서양화를 기반으로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가미해 이 두 가지를 무리 없이 융합하고 일체(一體)를 이룬 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였다. 장욱진처럼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미술사에 우뚝 서는 독자적 양식을 보여준 화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사가 향후 다양한 시각으로 더욱 풍성하게 쓰일 수 있음을 기대하게 한다.

장욱진은 앞과 뒤가 똑같은 심플하고도 정직한 화가이기도 했다. 장욱진은 “나는 정직하게 살아왔노라”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예술과 생활이 일치되는 모습을 보여준 보기 드문 화가였다. 그의 그림은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향해 정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