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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적자투성이 한전에 전력망 구축 떠맡겨… 美-獨은 정부가 직접 나서

입력 | 2023-10-17 03:00:00

[전력망에 발목 잡힌 첨단산단]
한전, 주민 보상-설득 홀로 수행
토지 보상비 年1400억원에 묶여
獨, 특례법 제정… 송전선로 2배로




전력망 구축이 늦어지는 데는 한국전력이 사업의 모든 단계를 혼자 맡아서 처리하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한전이 토지 보상 비용 등으로 쓸 수 있는 금액도 연간 1400억 원으로 묶여 있다. 해외에선 중요한 전력망 사업은 국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16일 한전에 따르면 전력망 구축 사업은 관련 법에 따라 한전이 사업 계획 수립부터 시작해 주민 보상 협의 및 시행, 건설까지 혼자 수행해야 한다. 송·변전설비를 짓기 위해선 인허가 등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한전이 홀로 사업을 담당하다 보니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기 어렵고,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을 때도 이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

전력망 구축 비용 역시 한전이 자체 재원으로 마련해야 한다. 송·변전설비에 대한 보상 기준은 현재 송전설비주변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 기준에 따른 연간 보상액은 1400억 원이다. 크게 오른 땅값 등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게다가 2021년부터 올 상반기(1∼6월)까지 쌓인 한전의 적자는 47조 원에 달한다. 적자가 쌓이는 상황에서 전력망 구축 비용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국민들이 내는 전기요금에 3.7%를 부가해 조성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제한적인 범위에서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무엇보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해 한전이 전력망에 투자할 재원을 충분히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선진국은 전력망 구축에 중앙정부가 직접 나선다. 독일은 이미 2009년과 2011년 전력망 구축을 위한 특례법을 만들었다. 주요 핵심 송전선로 사업을 선정해 해당 사업에 연관된 지역 주민과의 법적 분쟁 절차는 기존보다 간소화했다. 이와 함께 보상도 강화했다. 독일에선 8주 안에 토지 보상에 합의하면 공시지가의 75%를 간소화 보상금으로 추가 지급한다. 제도 개선을 통해 승인을 거쳐 건설까지 마친 독일의 송전선로 길이는 34km에서 80km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미국도 2021년 인프라법을 통과시켜 미국 에너지부가 국가 필수 전력망 사업을 선정하고 미국 연방 에너지규제위원회가 강제로 사업을 승인하는 기준을 마련토록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안에 ‘전력계통혁신대책’을 수립해 관련 제도를 전면 개편할 계획이다.


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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