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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3억 떠안은 광주 모녀, 관리비-장례비 840만원 남기고 투신

입력 | 2023-10-17 03:00:00

가장의 빚 배우자-자녀에 넘어가
상속포기 절차 몰라 시효 넘겨
“빚 너무 많아 힘들다” 유서 발견



광주 북부경찰서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모녀가 추락해 숨진 채 발견됐다. 상속 포기 절차를 몰라 사망한 가장의 빚 3억 원을 떠안은 모녀는 “빚이 너무 많아 힘들다”는 유서와 함께 마지막 달 아파트 관리비와 장례 비용 840만 원을 남겼다.

16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37분경 광주 북구 연제동의 한 아파트 화단에 A 씨(81)와 그의 딸 B 씨(52)가 쓰러져 있는 걸 아파트 경비원이 발견해 신고했다. 119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둘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경찰은 이 아파트 17층에 있는 모녀의 집 창문이 열린 점 등을 근거로 모녀가 투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모녀의 집에선 “빚이 많아 너무 힘들다”, “서로 의지하고 살았는데 한 사람이라도 잘못되면 더 이상 살 수 없다” 등의 내용이 포함된 유서가 발견됐다. 또 유서 옆 봉투에는 마지막 아파트 관리비 4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또 옷장 안에는 “장례 비용으로 써 달라”며 800만 원이 든 봉투가 놓여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모녀가 떠난 뒤에도 폐를 끼치기 싫어 미리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모녀는 수도권에 거주하다 최근 광주로 이사온 것으로 알려졌다. 모녀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이 아니었고, 아파트는 B 씨 소유였다. B 씨는 공기업에 다니고 있었고 A 씨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등으로 매달 110만 원가량을 받았다. 문제는 A 씨의 남편이 남긴 빚이었다. 모녀는 최근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 씨의 남편이 2019년 세상을 떠나며 남긴 3억 원가량의 빚이 배우자와 자녀에게 상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상속 개시를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내에 상속 포기를 하지 않으면 빚도 대물림되는데 이런 내용을 몰랐던 것이다. 최근 A 씨의 동생이 1300만 원을 모녀에게 건네기도 했지만 부채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A 씨는 동생에게 돈을 빌리며 “빚 때문에 힘들다”고 여러 차례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동사무소 등에서 미리 상속 포기 절차를 제대로 안내해줬다면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