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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웹툰化 독점권 달라”는 포털… 창작자 “권리 침해” 비판[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3-10-17 23:36:00

웹소설 2차 저작권 논란




드라마로 만들어진 카카오페이지 웹소설 ‘사내맞선’.

《“작가는 카카오페이지에게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대상 콘텐츠를 기반으로 2차적 저작물을 작성할 수 있는 독점적인 권한을 부여한다.”

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를 운영하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18∼2020년 자사 웹소설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가와 맺은 계약 내용의 일부다. 계약은 웹소설을 기반으로 웹툰, 공연, 영화, 드라마, 게임 등 2차 저작물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카카오 측에 넘기도록 했다. 웹소설의 주인공으로 피규어나 이모티콘을 만들고,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권한도 포함됐다. ‘사전에 작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단서는 달았지만, 웹소설이 인기를 얻을 때 적지 않은 수익을 낼 수 있는 독점 사업권을 플랫폼이 확보한다고 명시한 것이다.》




이호재 문화부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5개 공모전에서 당선돼 카카오엔터와 이 같은 계약을 맺은 작가는 28명(2차 저작물 유형 총 210개)이다. 그러나 지난해 11월까지 카카오엔터가 작품을 활용해 웹툰 등 2차 저작물을 만든 것은 11개 당선작을 활용한 16개뿐이었다. 카카오가 독점권을 갖고 있기에 나머지 17개 당선작은 2차 저작물을 만들 기회를 사실상 놓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왔다. 공정위는 최근 작가들의 2차 저작권을 부당하게 침해했다며 카카오엔터를 제재했다. 카카오엔터는 “창작자의 2차 저작권을 회사가 부당하게 양도받은 사례가 없다”며 법원에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대형 포털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웹소설 플랫폼이 작가들과 맺는 2차 저작권 계약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플랫폼 측은 ‘정상 계약’이라는 입장이지만 작가들 사이에선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플랫폼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어 불리한 내용의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많다. 이에 업계 특성을 반영한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플랫폼이 제시하는 계약 조건 거부 어려워”

“작가님 웹소설을 플랫폼 화면 상위에 노출하려고 합니다. 웹툰화 논의도 함께 하려고 합니다.”

최근 한 웹소설 작가는 작품을 연재하고 있는 대형 웹소설 플랫폼으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았다. 포털 사업자가 운영하는 이 플랫폼 측은 웹소설을 웹툰으로 만들기 위해 2차 저작권을 5년 동안 독점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작가는 5년 동안 이 플랫폼이 웹툰으로 만들지 않으면 자신의 작품이 다른 곳에서라도 웹툰으로 제작될 기회를 영영 놓칠까 봐 걱정이 됐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제안을 수용했다고 했다. 거절했다가 웹소설마저 홍보할 기회를 잃고 사장될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대형 플랫폼과의 관계를 망치기 두려워 어쩔 수 없었다”며 “자유로운 계약이란 허울을 쓰고 있지만, 사실상 ‘갑을 관계’에서 이뤄진 불공정한 계약”이라고 말했다.

네이버, 카카오 등 대형 포털이 운영하는 플랫폼은 인기를 모은 웹소설을 기반으로 웹툰 등을 만들어 함께 유통한다. 탄탄한 서사를 지닌 웹소설을 바탕으로 웹툰을 제작하면 성공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2019년 네이버시리즈에 공개된 웹소설 ‘화산귀환’은 2021년 동명의 웹툰으로 만들어져 네이버웹툰에 연재돼, 웹소설과 웹툰 누적 매출액이 150억 원에 이른다. 플랫폼이 지식재산권(IP) 가치가 높은 웹소설의 2차 저작권을 활용하고자 하는 이유다.

원칙적으로 작가는 기존에 작품을 연재했던 플랫폼이 아닌 다른 플랫폼과도 계약을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성공한 웹소설 작가라면 유리하게 계약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경우는 별로 없다. 플랫폼이 웹소설 연재를 시작할 때나 연재 중에 2차 저작물 제작에 대한 권한을 달라고 하면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22 웹소설 산업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가와 플랫폼 계약 체결 방식’에 대해 작가 500명 중 52%가 “플랫폼이 제시한 계약 조건을 사실상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작품 연재와 2차 저작권을 같이 계약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부당하다”는 응답이 55%를 차지했다.

이는 대형 플랫폼이 웹소설 시장을 과점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2022 웹소설 산업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웹소설 시장 전체 매출 1조390억 원 가운데 양대 플랫폼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차지하는 비율은 81%나 된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네이버시리즈, 네이버웹소설, 문피아 등 3개 플랫폼이 4266억 원(41.1%), 카카오페이지가 4145억 원(39.9%)의 매출을 올렸다. 구성림 공정위 지식산업감시과장은 “대형 플랫폼 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창작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며 “작가들이 더 나은 조건에서 2차 저작물을 제작할 기회가 봉쇄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엔 웹소설이 드라마나 영화로도 제작되면서 2차 저작권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지만 이 역시 웹소설 플랫폼 사업자가 만드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카카오페이지의 ‘사내맞선’은 웹소설과 웹툰을 합쳐 국내외 누적 조회 수가 3억2000만 회에 달한다. 이 작품을 지난해 드라마로 만든 제작사인 ‘크로스픽쳐스’는 카카오엔터 계열사다.





● “플랫폼, 수익의 최대 45% 가져가기도”

웹소설을 편집하는 출판사 격인 콘텐츠기업(CP) 중 상당수가 대형 플랫폼 소속인 것도 작가의 입지를 좁힌다. 보통 웹소설 업계는 3자 계약을 맺는다. 작가는 CP와 1차 계약을 맺고, CP가 플랫폼과 2차 계약을 맺는다. 수익도 플랫폼이 CP에 분배하고, CP가 이를 다시 작가에게 지급하는 식이다. CP가 작가들에게 2차 저작물 제작 권한을 양도하자고 제안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데 공정위에 따르면 카카오엔터는 CP 9개를 보유하고 있다. 플랫폼의 영향력 아래 놓인 CP 소속 작가가 적지 않은 셈이다. 한 웹소설 작가는 “데뷔 때 유력 CP와 맺은 계약이 나중에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며 “작가는 작품 홍보, 계약 관리 등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CP가 하자는 대로 계약을 맺곤 한다”고 했다.

수익 배분에도 문제가 있다. 통상 대형 플랫폼은 전체 수익의 30%를 기본 수수료로 가져간다. 작품이 수시 이벤트에 참가하는 대가로 추가 수수료를 가져가는 경우 총수수료는 최대 45%가 되기도 한다. 작품을 알리기 위해서는 홍보를 해야 해 이벤트는 사실상 필수 요소로 꼽힌다. 이에 작가의 몫은 전체 수익에서 많아야 50%에서 적게는 38%까지 떨어진다. 한 웹소설 작가는 “플랫폼이 네이버, 카카오에 한정돼 배분 비율을 조정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대형 플랫폼에 미운털이 박히면 작품을 써도 발표할 곳이 없어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했다. 김휘빈 한국웹소설작가연합 대표는 “대형 플랫폼이 CP까지 소유해 CP는 플랫폼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웹소설 표준계약서가 없어 문제가 악화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웹소설 작가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작품 연재와 2차 저작권을 한 번에 계약하면 안 된다” 등 유의할 점을 공유한다. 작가들이 온라인에 계약서를 올리고 문제가 없는지 서로 봐주기도 한다. 이융희 웹소설 평론가는 “웹소설은 2차 저작권 계약이 활발한 만큼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게임 등 각 분야별로 계약을 할 수 있는 세밀한 표준계약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문체부는 올 8월 창작자와 플랫폼 관계자 등을 모아 ‘민관 합동 웹소설 상생협의체’를 만들고 표준계약서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이 협의체에 참가한 서성종 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사무국장은 “연재 계약과 2차 저작권 계약서를 따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김성은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장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 웹소설 표준계약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호재 문화부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