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스라엘 여군이 2012년 6월 팔레스타인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소총으로 무장한 채 경계를 서고 있다. 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스라엘은 여성이 의무 군복무를 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등 위험 지역에도 여군들이 투입된다. 이스라엘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내가 정말 미소 짓고 있었을까(To see if I am smiling)’에는 가자지구 점령군으로 복무했던 이스라엘 여군들의 목소리가 생생히 담겨 있다. 제대 후 20대 후반이 된 그들은 당시 기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제 아이가 집에서 울어댈 때면 제 기억은 (아기들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던) 그곳으로 향하게 돼요. 죄책감이 드냐고요? 그냥 제 마음속 거울을 보는 느낌이에요. 저에게 잠재된 폭력성을 비춰 주는 거울… 저는 좋은 엄마라고 생각해요. 악마 같았던 그 순간만 빼고요.”
이스라엘은 군사강국이다. 첨단 무기로 무장한 것은 물론이고 전쟁 때마다 30만∼40만 명의 정예 예비군이 소집된다. 2009년과 2014년 가지지구에 진입해 하마스와 지상전을 벌였을 때도 팔레스타인에 압도적인 피해를 안겼다. 2009년 전투 때 이스라엘 사망자는 13명에 불과했지만 팔레스타인에선 민간인 900여 명을 포함해 1400명이 숨졌다. 2014년에는 이스라엘(72명)의 30배에 달하는 21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했다.
덜 죽고 많이 죽이면 그것이 이기는 것일까. 그게 승리한 전쟁이라고 해도 이스라엘은 그 승리를 통해 얻어낸 것이 거의 없다. 하마스는 이내 빈자리를 다시 채워 어김없이 이스라엘에 공격을 재개했다. 가족과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인들은 하마스에 의지하며 켜켜이 복수심을 쌓아왔다. ‘전쟁 영웅’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군인들 역시 손에 무고한 이들의 피를 묻혔다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고 평화와는 멀어지는 오랜 악순환은 이번에도 재연될 조짐이다. 이스라엘은 곧 하마스의 본거지 가자지구에 역대 최대 규모 지상군을 투입할 예정이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1500여 명이 사망하는 초유의 대참사를 당한 이스라엘로선 가혹한 대가를 안기는 것 외에 마땅한 대응책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 가자자구에서 전면전이 벌어지면 이스라엘 군인들의 희생이 어느 때보다 클 수 있다. 이스라엘로선 국제사회의 압박과 이란 등으로 확전될 위험 때문에 민간인 피해를 줄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한 지역을 통째로 초토화시키기보단 밀착한 거리에서 벌어지는 시가전으로 소규모 전투를 이어가야 한다. 전투원과 민간인이 구별되지 않는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는 수백 km에 달하는 땅굴 곳곳에 함정을 파놓고 이스라엘군을 기다릴 것이다.
중동의 해묵은 보복의 쳇바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지도자들이 있었다.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권을 인정한 오슬로 협정을 체결한 이츠하크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 1978년 중동과 이스라엘 간 최초의 평화협정을 이끈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둘 다 각자의 진영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혀 최후를 맞았다. 라빈 총리는 유대인 민족주의자의 손에, 사다트 대통령은 이슬람 과격단체에 의해 암살됐다.
평화보다는 전쟁, 공존보다는 배제를 추구하는 쪽이 살아남는 생태계가 유지되는 한 증오에 기생하는 세력들이 사람들의 운명을 쥐게 된다. 이런 자멸적인 게임의 룰이 지배하는 곳에선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정권이나 하마스 같은 극단적 무장단체들이 서로가 서로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주며 주인공으로 부각된다. 이스라엘에서 극우파를 솎아내고,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를 고립시키는 게 그나마의 해법일텐데 핏빛의 외신 사진들이 시시각각 쏟아지는 지금의 전시 국면에선 그런 주장들이 별로 설 자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