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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發 물가불안 확산에도… 뾰족수 없는 정부

입력 | 2023-10-18 03:00:00

“배추 2200t 풀고 천일염 50% 할인”
긴급회의 열고 대응 총력에도
유가 등 대형 악재에 고민 커져
내일 금통위 앞둔 한은도 금리 딜레마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 안정 관계장관 회의’에 참석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생각에 잠겨 있다. 추 부총리는 “모든 부처가 소관 분야의 물가를 면밀히 점검, 대응하는 등 서민 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로 전 세계적으로 중동발(發)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진 가운데 정부가 농수산물 할인 지원, 할당관세 도입 등을 내놓으며 또다시 물가 잡기에 나섰다. 올 들어 정부가 집중호우, 추석 등 물가 상승 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내놨지만 물가는 쉽사리 잡히지 않는 모습이다. 뚜렷한 정책 수단이 없는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물가 대응 총력에도 카드 없는 정부

정부는 17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민생·물가 안정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물가 안정 대책을 논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 물가 안정에 모든 부처가 만전을 기해 달라”고 한 지 하루 만에 예정에 없던 회의를 열었다. 물가 안정 회의에 이례적으로 중소벤처기업부와 보건복지부 장관, 공정거래위원장까지 참석했다.

정부는 김장철을 앞둔 이번 주부터 2주간 배추 2200t을 집중 공급하고, 이달 말부터는 천일염을 50% 싸게 공급하기로 했다. 이 밖에 대파를 비롯한 12개 농산물 최대 30% 할인 지원 등 여러 방안도 담았다. 하지만 이들 방안은 앞서 정부가 내놨던 대책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추석을 앞둔 9월 15일 진행된 ‘물가·민생 점검회의’에선 사과·배 등 성수품에 대해 시중가보다 최대 20% 할인되는 실속 선물세트를 확대 공급하는 방안이 발표됐다. 7월 26일 ‘물가 관련 현안 간담회’에선 100억 원을 투입해 양파, 상추, 닭고기 등 농축산물 할인 행사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대책들에도 불구하고 물가 상승률은 8월부터 두 달째 3%대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안팎에선 물가를 통제할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 재정·통화 정책을 통해 시중에 유동성이 확대된 여파가 이어지고 있어 구조적으로 고물가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간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주로 사용하던 수단은 공공요금 통제인데, 에너지 공기업 적자가 쌓인 상황에서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국제유가 상승, 이상기후 등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사실상 물가를 좌지우지하는 점도 물가 대응을 어렵게 한다. 이런 가운데 계속 대책을 내놔야 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기재부 공무원들이 물가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에 가길 꺼린다는 말도 나온다.



● 금리 결정해야 하는 한은도 딜레마
물가가 들썩이면서 19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둔 한국은행 역시 고심에 빠졌다. 급증하는 가계 이자 부담이나 경기 둔화 등을 고려하면 금리 동결이 유력하지만,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계속 동결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한은이 이번에 기준금리 동결을 유지하더라도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수입물가는 3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9월 수입물가지수는 한 달 전보다 2.9% 상승했다. 수입물가지수는 7월(0.2%) 이후 3개월 연속 오름세다. 수입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5일부터 11일까지 52개 기관 100명의 채권 전문가를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90%가 이번 금통위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세종=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