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 추진] ‘의대 증원 예고편’ 전공의 조정 잡음
정부가 필수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7월부터 의대 입학 정원 확대의 ‘예고편’에 해당하는 비수도권 의대 전공의 증원 작업을 하고 있다. 16일 서울시내 한 대학 의과대학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최근 비수도권 A국립대병원은 보건복지부로부터 영상의학과 전공의(레지던트) 정원을 내년에 2배로 늘려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지역의료를 살릴 대책 중 하나였다. 하지만 A병원은 복지부가 전공의를 늘려준다고 해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영상의학과의 경우 병원 내 ‘가르치는 의사’(지도 전문의)가 전공의보다 최소 5명 더 많아야 하는데, 그만한 인력을 단기간에 구할 수 없었던 것. A병원 관계자는 “지역병원에선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말리기도 바쁜 상황”이라고 말했다.
● 비수도권 전공의 30% ‘파격’ 증원에 곳곳 파열음
복지부는 올 1월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따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공의 정원 비율을 현행 6 대 4에서 내년 5 대 5로 조정하는 작업을 7월부터 본격적으로 벌여 왔다. 비수도권 병원은 현재 1300여 명인 전공의 정원이 1700명 이상으로 약 30% 증가하게 된다. 앞으로 늘어날 의대 입학 정원을 지역 ‘미니 의대’에 집중 배치하겠다는 계획과 전공의 정원 조정을 연계하면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사를 늘릴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이번 전공의 정원 조정이 의대 입학 정원 확대의 기초 작업인 셈. 의료계에선 서울에 편중된 의사 인력을 재배치하기 위해 전공의 정원을 조정하는 방향 자체는 옳다고 본다.
이 중 창원경상국립대병원의 경우 지난해 1월 1명뿐이던 응급의학과 교수가 퇴직한 후 응급의학과 전임교수가 없는 상태다. 제주대병원에 재직 중인 흉부외과 교수는 단 1명이다. 이에 의대 입학 정원을 확대해도 실습 기관인 대학병원의 교수가 부족해 충실한 교육이 이뤄지기 힘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수도권 외상센터 전공의는 삭감
반면 일부 병원은 ‘수도권’이란 이유로 필수의료 분야에서 활동할 전공의를 뽑지 못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인천과 경기 지역의 인구 10만 명당 전공의 정원은 각각 5.0명, 4.8명으로 전국 평균(6.8명)보다 적다. 하지만 복지부의 새 방침에 따라 내년부터는 약 240명의 전공의 정원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중증외상 환자가 몰리는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은 최근 복지부로부터 정형외과 전공의 정원을 현행 4명에서 3명으로 줄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 병원 관계자는 “지금도 이미 중증외상 환자 대비 전공의 수가 부족한데, 단순히 서울과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더 줄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자칫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을 더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국립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필수의료 분야를 지망하는 의대생 상당수는 ‘인서울’ 대학병원의 교수직을 노린다. 전공의 비율 조정으로, 그 문이 좁아지면 아예 지망 과목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18일 부산대병원 등에 대한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의대 교수 등 인프라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당 강득구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현재 의대 시설, 교수 인력 등의 조건에서 정원만 늘린다고 (필수 의료 확충이라는) 목표가 달성되는지 의문”이라며 “의대 교수 등 인프라 확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국립대병원장들이 의견을 모아 복지부와 교육부에 건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정성운 부산대병원장은 “의료분쟁이나 의료사고 위험성이 큰 점도 필수의료 진료과목을 회피하게 되는 이유”라며 “정원을 늘려서 의사가 많이 나와도 필수의료를 담당할 의사 확보와 비례할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권구용 기자 9drag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