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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규모’ 직접 밝히려던 尹, “중재자 역할을” 조언에 선회한듯

입력 | 2023-10-19 03:00:00

[의대 정원 확대 추진]
세밀한 조율없이 앞당겨 발표 추진
의사들 반발에 ‘숫자’ 안밝히기로




정부가 2006년부터 18년째 3058명에 머물러 있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기로 방침을 세운 가운데, 구체적인 규모와 발표 시점을 두고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1000명 이상 확대안’을 발표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지만 이번 주 들어선 “당장 숫자를 내놓지는 않는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러한 정부의 기류 변화를 두고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18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의대 정원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당초 300∼500명대 증원 방안을 구상 중이었다. 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의협)와 함께하는 의료현안협의체, 환자단체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의사인력전문위원회 등의 논의를 거쳐 12월쯤 확대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추석 직전 윤 대통령이 조규홍 복지부 장관에게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확대할 것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발표 시점도 이달 중으로 앞당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을 통해 이런 기류가 알려지자 의협은 정부가 합의되지 않은 확대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총파업 카드까지 꺼내 들며 강력 반발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17일 “정부가 발표를 강행한다면 14만 의사들과 2만 의대생들은 2020년 파업 때보다 더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의료계 전문가들도 대통령실에 “의사들의 반대가 거셀 텐데 대통령이 숫자를 확정해 발표하면 이후 타협의 여지가 없어진다. 대통령은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통령실은 19일 필수의료 관련 정책 발표는 진행하되 의대 정원 확대 숫자는 밝히지 않는 것으로 방침을 선회했다. 정부 내에선 “대통령실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국면 전환용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서두르려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의사인력전문위원회에 참여하는 한 전문가도 “위원회에서 구체적인 숫자 논의를 한 적이 없는데 ‘1000명’ 정원 확대 이야기가 나오더라”고 전했다.

이번 정부 들어 주요 정책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발표됐다가 동력을 잃고 마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지난해 7월 윤 대통령은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해 갑자기 만 5세 입학이 공식화되며 교육 현장에 혼란을 초래한 바 있다. 주 52시간제 개편안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최종안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아직까지 개편안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의대 입학 정원 확대 역시 세밀한 조율 없이 불쑥 튀어나오면서 의협을 필두로 각계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남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은 18일 전남 지역 의대 신설을 요구하며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삭발 시위를 벌였다. 의료계 반발을 넘어 의대 증원이 확정되더라도 증원 방식을 두고 ‘2라운드’갈등이 벌어질 것임을 보여준 셈이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