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연결된 마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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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혼자 살아본 사람들은 안다. 아플 때 옆에 아무도 없으면 얼마나 더 아프게 느껴지고 입맛도 없어지는지. 괜한 서러움에 그냥 그런 것 같은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로 더 아프기 때문일까. 신기하게 연결된 몸과 마음의 고통의 원리를 살펴보자. 게티이미지뱅크
지난주 기사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 진통제 ‘한 알’이 효과 있다? (10월 15일 자)’에서 소개했듯,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느끼는 뇌 영역이 일부 겹치기 때문이다. 해당 영역은 몸이 아플 때와 사람에게 상처받아 마음이 아플 때 모두 활성화된다. 이를 반대로 보면,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힘이 되어줄 때 뇌의 고통을 느끼는 뇌 영역의 활성화 정도를 줄일 수 있다. 주변에 나를 보살피는 존재의 유무에 따라, 진짜로 더 아플 수도 덜 아플 수도 있는 것이다.
남자친구 사진만 봐도…“덜 아프네?”
올해 개봉했던 영화 ‘롱디’에서 남녀 주인공이 장난스러운 자세로 셀카를 찍는 장면. 평소 의지가 되는 연인의 사진만 보더라도 몸이 아플 때 통증이 덜 하다고 느낄 수 있다. (사진은 실험 내용과 직접 관계없음) 트웰브져니 제공
예상대로 남자친구 사진을 본 여성들은 다른 사진을 본 여성들에 비해 통증이 꽤 참을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리적 지지 대상의 존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통증 감소 효과가 있었다.
수술 뒤 환자가 회복할 때 보호자의 존재 유무에 따라 느끼는 주관적 통증이 다르다는 연구 결과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아플 때 애인도 없고, 가족도 없으면?
그럼 이쯤에서 아플 때 애인도 없고, 가족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다행히도 위로될 만한 또 다른 연구가 있다. 미 플로리다대 마이클 로빈슨 박사 연구팀은 얼음물에 3분 동안 손 담그고 참기 실험을 했다. 물에 손을 넣고 참는 동안 실험참가자의 옆에 △친구가 응원하거나 △모르는 사람이 응원하거나 △아무도 없이 혼자 있는 조건 등으로 그룹을 나눴다. 여기서 응원했다는 의미는 고통에 공감해주고, 눈을 맞추며 힘을 북돋아 주는 의사소통을 했다는 것을 말한다. 3분이 지난 뒤 어떤 그룹이 가장 덜 고통스러웠다고 답했을까?
연구팀은 당연히 친구에게 응원받은 사람이 가장 덜 고통스러우리라 예측했다. 그런데 실제 결과는 조금 달랐다. 친구가 응원해준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이 응원해준 사람들이 답변한 통증 정도에 차이가 거의 없었다. 곁에 있었던 사람이 친분이 있다고 해서 덜 아픈 것도 아니었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더 아픈 게 아니었다. 물론 혼자 있었던 사람은 이들 중 가장 손이 아팠다고 답했다.
실연의 상처, 데일 것 같은 고통 견딜 때와 맞먹어
모르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힘을 얻게 되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차였을’ 땐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컬럼비아대 심리학과 에드워드 스미스 교수 연구팀은 최근 6개월 이내에 연인과 헤어진 남녀 40명을 모집했다. 연구팀은 이들이 ‘원치 않는 이별을 겪었다’라고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사실 일방적으로 차였다는 의미다.
실연의 아픔을 수습 중인 이들에게 연구팀은 다소 잔인한 실험을 했다. 헤어진 연인 사진을 보여주고, 어떻게 차였는지 이별 상황을 구체적으로 떠올리며 고통스러웠던 장면을 그려보게 했다. 그러는 동안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이들의 뇌 활동을 관찰했다.
사진을 치운 뒤, 잠시 쉬었다가 이번에는 왼쪽 팔뚝 안쪽에 후끈후끈한 열 패치를 붙이고 15초 동안 뇌 활동을 촬영했다. 처음엔 마음의 상처를 들춰내더니, 두 번째엔 진짜로 몸을 아프게 만든 것이다.
몸이 자주 아프면, 마음도 자주 아프다
만성 통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신체 통증에 상당히 예민해지는데, 이때 대인 관계에서 받는 작은 상처에도 예민해지고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펫노트 제공
여러 연구에 따르면, 둘 중 하나의 통증에 예민한 사람은 나머지 하나에도 민감해질 수 있다고 한다. 신체 통증에 민감한 사람은 대인 관계에서 더 잘 상처받을 수 있다. 대인 관계에서 민감해 자주 마음을 다친다면, 신체적 통증에도 더 예민하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두통, 가슴 통증 등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만성 통증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모임에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 신체 통증에 민감한 만큼 대인 관계에서 생기는 미묘하고 사소한 갈등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사람을 만나는 것에 공포증이 생기기도 한다. 캐나다 위니펙대 심리학과 연구팀에 따르면, 신체적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만성 통증 환자 130명을 조사한 결과 93명이 사회적 만남을 꺼리거나 사회 공포증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반대로 자존감이 낮거나, 불안한 애착 성향을 보이거나, 대인 관계에 민감해 자주 마음의 상처를 받는 사람들은 신체적 고통에도 민감해질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같은 수준의 신체적 고통을 겪더라도 남들보다 더 아프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모르는 사람의 격려와 응원의 말이 고통을 잊게 만드는 힘이 될 때가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플 때 모르는 사람이라도 나를 격려해주고 응원해준다면 마음이 든든해져 덜 아프게 느껴진다는 것은 놀랍지 않은가. 나의 사소한 관심과 격려의 말이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기억하자.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