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집행위, 경쟁제한 관련 시정안 요구 아시아나 화물사업 매각·일부 노선 이전 등 추진 30일 아시아나 이사회서 관련 논의 화물사업 매각 부결 시 통합 무산 “아시아나 위기·국가 항공 산업 경쟁력↓” “한진해운 사태처럼 산업 주권 악화 가능”
이에 따라 대한항공이 제출할 시정조치안에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과 유럽 4개 노선 슬롯(slot) 이관 등의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해당 시정조치안을 제출하기 위해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이사회 승인이 필요하다. 때문에 시정조치안에 대한 아시아나항공 이사회 찬성·반대 여부가 통합 추진 지속을 위한 실질적인 마지막 관문으로 볼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이사들의 결정에 회사의 생존과 국내 항공 산업의 미래가 달린 셈이다.
특히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에서 해당 시정조치안이 부결될 경우 약 3년간 끌어온 통합 작업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EU 경쟁 당국 반대로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아시아나항공은 다시 파산 위기에 몰릴 수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은 1714%로 집계됐다. 기업과 직원 생존을 위한 새로운 대안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산업은행의 공적자금 추가 투입은 규모 등이 크게 제한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사실상 공적자금 투입이 한계에 다다른 산업은행이 최종 대안으로 합병을 주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한항공 외에 아시아나를 인수할 마땅한 기업은 없었고 현 상황에서도 아시아나의 악화된 재무구조를 감당할 수 있는 인수 후보자 등장은 요원한 상태다.
결과적으로 이사회 ‘시정조치안 동의’가 현 상황에서 합병을 위한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업계에서는 국가 항공 산업 경쟁력 확보와 미래 성장을 위한 개편을 위해서는 아시아나 이사회의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자력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할 역량이 부족하고 추진하더라도 대규모 구조조정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화물사업이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반짝 특수’를 누렸지만 현재 매출 비중 등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화물사업을 국내 다른 항공사에 매각하면 항공자원 국부 유출 없이 합병 불씨를 살릴 수 있고 화물사업을 인수한 항공사는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국가 항공 산업 측면에서는 동반성장으로도 볼 수 있다는 평가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통합을 통해 국내 항공 산업을 구조적으로 개편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아시아나 이사회 결단이 통합 추진과 가능 여부에 캐스팅보트가 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합병 무산 시 항공 산업 경쟁력↓… “제2의 한진해운 사태 우려”
일각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이 무산되면 국내 항공 산업이 제2의 한진해운 사태를 맞이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항공 산업은 물류의 한 축을 차지하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항공화물 수출 비중은 전체의 0.5%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수출액으로만 보면 30~40%의 비중을 차지한다. 모두 고부가가치 제품들이다. 한진해운의 경우 지난 2017년 파산하면서 수십 년간 쌓아온 해운 네트워크와 인프라가 사실상 모두 망가졌다. 수출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대한민국 경제구조상 큰 손실이었다는 평가다. 이후 일본과 중국, 대만, 유럽 등 다른 국가 해운사들이 우리 수출품을 실어 나르고 있는 실정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이 무산되면 결과적으로 국내 항공 산업 경쟁력을 악화시켜 해운 산업처럼 항공 산업 주권이 다른 나라에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결국 문제는 아시아나항공 재무상태… “독자생존 가능했다면 합병 추진 없었다”
업계에서는 합병을 추진하게 된 근본 원인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악화된 재무상태를 꼽는다.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독자생존이 가능했다면 합병 추진은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현 재무상태로는 이자비용 감당도 어려운 상황이다. 작년 말 기준 아시아나가 지불해야 하는 이자비용만 연간 3819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영실적은 영업이익이 7416억 원, 당기순이익은 1565억 원으로 팬데믹에 따른 화물사업 호조에 힘입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의 약 60% 이상을 이자비용으로 지불해야 했다. 이마저도 화물사업이 반짝 특수를 누렸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전 세계적인 물류난 이슈로 실적 특수를 누리면서 미래를 위한 대비는 미약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팬데믹 기간 다른 항공사는 일부 사업부나 기타 자산 등을 매각하면서 지속가능하고 건전한 재무구조 확보에 고군분투했다. 반면 아시아나는 당시 글로벌 경기 흐름에 안주하면서 미래 대비는 뒷전이었다는 평가다. 그 결과 부채비율은 상반기 기준 1700%를 넘어선 상황. 대한항공 197%, 제주항공 510% 등 다른 항공사와 비교하면 심각성이 더욱 부각된다.
항공화물시장의 경우 팬데믹 기간 글로벌 물류 대란으로 항공운임이 치솟았고 이로 인해 항공사 생존에서 화물사업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은 사실이다. 여객사업이 바닥을 치면서 아시아나의 경우 화물사업 매출 비중이 77%(2021년) 수준까지 높아지기도 했다. 다만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접어들면서 아시아나 화물사업 매출 비중은 2019년 수준으로 돌아오고 있다. 올해 상반기 비중은 25% 수준으로 집계됐다. 여객기 화물칸을 이용해 화물을 수송하는 ‘벨리카고’를 제외하면 화물사업 비중은 더욱 낮아진다. 화물기로만 실어 나르는 매출 비중은 15% 수준으로 추정된다.
동아닷컴 김민범 기자 mb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