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인테리어로 걸어놓은 그림이 건강이나 장수와 관련 있을까. 이 주제를 처음으로 들고
나온 이가 중국 명나라의 화가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이다. 중국 회화사에서 그림과 ‘양생(養生)의 도’를 접목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중국의 산수화를 북종화와 남종화로 구별한 후, 북종화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반면 남종화는 수명을 늘려준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장강(長江, 창장강) 이남 지역에서 수묵 산수화를 즐겨 그려온 남종화가들 중에서는 장수하는 이들이 많았다. 명나라 시대의 문징명(89세), 심주(82세), 진계유(81세) 등은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아도 오래 살았다. 동기창 자신도 81세까지 살았다. 반면 채색 산수화를 그려온 북종화가들은 대개 환갑을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북송시대 북종화의 대가 이당(李唐)이 그린 만학송풍도(萬學松風圖). 고난도의 기법인 ‘부벽준법’을 구사한 작품이다.
동기창은 그 이유를 그림 기법에서 찾았다. 북종화는 붓으로 가늘고 긴 선, 짧고 굵은 선 등 윤곽선을 그리고 도끼로 찍어내거나 끌로 파내듯 대상물을 표현하는 구작법(鉤斫法)을 구사한다. 이 기법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세밀해 화가의 심신을 고달프게 하고 결국 수명까지 단축시킨다는 게 동기창의 주장이었다. 게다가 매너리즘적 기교와 정형화된 기법은 그림에서 생동감이 결여되는 단점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남종화가 동기창의 산수 그림.
남종화와 북종화의 이같은 특징은 기운(氣運)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화가이자 미술사가인 딩시위안(丁羲元)은 저서 ‘예술풍수’에서 “구작법을 구사한 북종화는 선으로 각을 만들 듯 공간의 경계를 확정지음으로써 기(氣)를 안으로 가두거나 흡수하는 작용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반면 “선담법을 구사한 남종화는 공간의 경계선이 모호해 기가 외부의 공간으로 흘러나온다”고 한다. 즉 남종화에서는 기운이 열린 공간으로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기운의 유동성을 두고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고 표현한다. 기운생동은 더 나아가 작품과 감상자에게도 이어진다. 결국 남종화를 즐기거나 가까이 하면 그림과 감응한 감상자의 건강과 장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로 볼 때 그림은 기운을 담고 있는 물상(物像)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를 다루는 풍수 인테리어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고려 요소다. 아무 그림이나 집안에 들여 놓아서는 안된다는 경고일 수 있기 때문이다.
● 화가의 출세작에 주목해야
풍수 인테리어 측면에서 집에서 걸어놓기에 좋지 않은 그림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오래된 무덤에서 출토되거나 도굴된 것들은 음물(陰物)이라고 해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들여놓아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사람이 사는 집은 양기가 충만한 양택(陽宅)이어야 하는데, 죽음과 관련 있는 음기의 물건이 들어올 경우 건강에 해로움을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덤에서 출토된 인형, 순장용으로 쓰인 도자기나 토관, 저승세계를 표현한 미술품 등은 아무리 예술성이 빼어나다고 해도 집안의 거실이나 침실 등에 놓아두어서는 삼가야 한다. 비슷한 이유로 사람의 백골, 귀신, 도깨비 등 음산하거나 오싹한 느낌이 드는 그림들도 풍수인테리어에서는 꺼리는 대상이다.
다음으로 수명이 짧거나 요절한 화가의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는 화가와 작품은 서로 기운이 이어져 있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원리가 작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그림을 통해 화가의 건강과 수명 기운이 감상자에게 전달될 수 있으므로, 특히 젊은 층일수록 요절 작가의 작품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화가가 그린 작품의 실제 모델이 병약하거나 요절한 경우에도 이런 기운이 전달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한편 남의 그림을 베낀 모작(模作)이나 남의 그림을 위조한 위작(僞作)도 좋지 않다고 본다. 미술 전문가들은 모작을 자주 가까이 하면 안목이 흐려져 기를 상하게 하고, 진위를 가리는 눈마저 잃게 된다고 경고한다.
19세기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사례로 들어 보자. 37세로 요절한 그는 죽음 직전에 ‘ 가세 박사의 초상’(1890년 작)이라는 작품을 남겼다. 가세는 반 고흐의 정신 질환을 치료하던 의사였다. 반 고흐는 파리 근교 오베르에서 자살하기 얼마 전에 이 유화를 그렸는데, 현재 두 가지 판본이 전해진다.
두 작품 모두 의사인 폴 가세 박사가 오른쪽 팔에 머리를 괘고 몸을 비스듬히 기울여 탁자에 기대 앉아 있는 모습이다. 탁자 위로는 박사의 왼손이 ‘디기탈리스’라는 식물을 쥐고 있다. 디기탈리스는 심장 통증을 치료하는 강심제(强心劑) 재료여서 폴 가세 박사와 반 고흐를 이어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기운적인 측면에서는 작품의 기운이 드나드는 기구(氣口) 역할을 하고 있다.
두 가지 판본이 전해지는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인 ‘가세 박사의 초상’. 둘 다 반 고흐의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림의 기운에서는 서로 차이가 난다. 왼쪽이 오르세 미술과 소장 작품이고, 오른쪽이 경매에 출품됐던 작품이다.
반 고흐가 죽은 지 100년이 되던 1990년 ‘ 가세 박사의 초상’이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됐다. 이 작품은 일본의 제지회사 회장 사이토 요헤이에게 8250만 달러(약 1000억 원)에 팔려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또 다른 판은 현재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가셰의 유족들이 1950년대에 기증한 작품이다. 두 그림은 배경색이나 구도가 약간의 차이가 난다. 경매에 나온 그림은 노란색 책 두 권이 탁자 위에 놓여져 있는 데 반해 미술관 소장 작품은 책이 그려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한동안 위작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예술풍수의 기운생동(氣韻生動) 관점으로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두 작품은 감정 전문가들에 의해 고흐의 진품이라고 판정났지만, 두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서로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오르세 미술관의 작품은 고흐가 그린 다른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동일한 작가가 그린 그림들에서는 기법이나 형식이 아무리 달리 구사돼 있어도 작가 고유의 에너지 파동(기운)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가의 에너지를 장인의 기운이라고 해서 중국에서는 ‘ 장기(匠氣)’라고 표현한다.
반면 경매에 나온 작품은 반 고흐의 고유한 기운과 좀 다르게 느껴진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기의 파동이 거친 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경매에서 이 작품을 구매한 사이토 요헤이는 3년 후 뇌물 스캔들로 징역형을 받아 감옥살이를 했고, 1996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과 함께 이 그림은 구매자가 여러번 바뀌면서 현재 행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화가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좋을까. 일단 화가의 출세작은 좋다고 본다. 화가가 고난을 겪으면서 성공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은 창작의 생명 기운이 강하게 담겨 있다. 그런 기운은 소장자나 감상자에게 좋은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와는 달리 성공했던 화가의 절필 작품은 반대 경우에 해당한다. 화가가 기운이 이미 쇠했거나 완전히 쇠하기 전에 잠깐 힘을 내 그린 것이므로 창작의 생명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작품의 희소성 측면에서 보면 마지막 작품이라는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예술 풍수적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결국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고 소장하는 행위는 작가의 좋은 에너지를 ‘작품 값’이라는 이름으로 구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