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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정신분열증)이나 치매를 앓는 의사 최소 172명이 보건당국의 면허 심사 없이 수년 간 환자들을 진료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외과·산부인과·소아과 등에서 근무해온 이들은 2019년부터 올해 2월까지 최소 76만217건의 의료 행위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마약류 중독자가 의료인 면허를 그대로 유지하고 병원에서 근무한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19일 의사 면허 감독 권한을 갖는 보건복지부에 대한 정기감사 결과 보고서를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감사원은 복지부에는 “국민 건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 마약 중독 의사가 버젓이 요양병원 근무
감사원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 2월까지 치매(102명)나 조현병(70명) 진단을 받은 의사는 총 172명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 의사 면허가 정지되거나 취소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렇다보니 한 소아과 전문의는 2019년 12월 조현병 진단을 받고도 지난해 12월까지 3년 동안 3만9971건의 진료를 봤다. 2021년 치매 진단을 받은 한 외과 전문의는 이듬해까지 656건의 의료 행위를 했다. 조울증을 앓다가 자신이 거주하던 오피스텔 옥상에 불을 질러 결국 치료 보호 처분을 받았던 한 의사까지 면허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의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을 점검한 결과, 의사가 2018년 5월~2022년 12월까지 본인이나 가족에게 마약류를 처방한 건수는 11만8416건에 달했다. 이 중 마약류를 셀프 처방해 자신에게 투여한 의사는 3만7417명이었다. 연간 50회 이상 자신이나 가족에게 반복 처방한 의사는 44명, 연간 100회 이상 반복처방은 12명이었다.
마약 중독으로 치료보호 처분까지 받았던 의사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요양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의대생이었던 A 씨는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중독으로 지난해 3월부터 7월까지 치료보호 처분을 받았지만 치료보호를 받는 기간 한 요양병원에서 근무했다. 치료보호를 마친 뒤엔 올해 아무런 제약 없이 의사 면허까지 취득해 같은 병원 마취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인 ‘트리돌’ 중독 사실이 있는 의사 B 씨의 경우 치료 보호 기간인 지난해 9월부터 요양병원으로 이직해 마취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부산에서 근무하는 의사 C 씨는 2016년 2월부터 3년 간 총 142회에 걸쳐 마약류인 약품을 처방받아 투약했다. 이에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그 역시 면허 정지나 취소 처분 등을 받지 않았다.
● 복지부, 의료법 위반 의사에 노골적 ‘봐주기’
복지부가 진료기록부 허위 작성 등 의료법 위반 혐의로 적발된 의사에 대해 처분을 미뤄 징계시효를 넘기도록 하는 등 노골적인 ‘봐주기’ 사실도 이번에 확인됐다. 감사 결과 복지부가 수사기관으로부터 의료법위반 통보를 받고도 처분을 하지 않아서 시효를 넘긴 사건은 2018년 이후에만 24건에 달했다.
의료법 위반 혐의로 면허가 취소되거나 정지된 의사들이 프로포폴 등 마약류 의약품을 처방하는 등 몰래 진료 행위를 하고 있는 실태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위료법위반 혐의로 행정처분을 받은 의사 1082명의 24%인 264명이 처분 기간 동안 마약류 의약품을 처방하는 등 진료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