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 교수 그림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30년 전 내가 박사후연구원이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박사후 과정을 밟기 위해 5곳의 외국 대학 지도교수에게 타자기로 쓴 장문의 편지와 이력서를 보냈다. 당시는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이라 복사한 논문들을 두툼한 항공우편으로 보냈다. 더 많은 곳에 보내고 싶었지만, 시간강사로 생활을 꾸려야 했던 터라 항공우편 요금이 상당히 부담됐다. 이력서를 보내면서 가장 빨리 답장이 오는 곳으로 간다는 원칙을 정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올해는 2명의 여성 과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했다. 보수적 노벨상의 천장을 뚫은 두 여성 과학자는 생리의학상을 받은 헝가리 출신의 커리코 커털린 박사와 물리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안 륄리에 박사다.
특히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커리코 박사의 삶이 흥미로웠다. 1955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일평생 mRNA를 연구했다. 스물아홉 살 때 헝가리 정부의 연구비가 중단되자 헝가리에서는 더 이상 mRNA 연구를 계속할 수 없었다. 오직 연구를 하기 위해 커리코 박사는 미국 필라델피아 템플대 박사후연구원 자리가 나자 그곳으로 향했다. 헝가리에서는 100달러 이상 반출할 수가 없어 딸의 곰 인형 속에 전 재산 1000달러를 숨겨서 떠났다. 그후 그녀의 삶은 여러 대학을 옮겨 다니는 비정규직 연구원이었고, 마흔 살이 되던 해에는 암 진단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mRNA 연구를 지속했다. 그런 30여 년간의 mRNA 연구가 빛을 본 것이다.
토요일까지 일했던 생명공학과 개구리 이 교수가 며칠 전 ‘토요일은 이제 좀 쉬어야지’ 하면서 떠나간 제자에 대한 아쉬움에 허공을 바라본다. 제주도 당근밭에서 출발한 과학적 열정이 국경을 넘어 어디까지 갈지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