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랜드/토머스 할리데이 지음·김보영 옮김·박진영 감수/520쪽·2만2000원·쌤앤파커스
“노스슬로프를 배회하던 말과 그 뒤를 쫓던 동굴사자에게 드넓은 스텝은 영원할 듯 보일 테지만 장구한 시간 규모에서 보면 영속성이란 환상이다. 얼음이 물러나면 비가 한 방울만 내려도 말들이 발굽을 힘차게 내딛던 딱딱한 땅은 이내 무너져내린다. 명멸하는 작은 불빛 하나에도 오로라는 사라진다.”
영국 국립자연사박물관 연구원이 지구 생명 역사의 주요 장면을 장대한 풍경화처럼 그려낸 책이다. 약 2만 년 전 신생대 플라이스토세의 알래스카에서 시작해 눈에 보이는 크기의 생물이 나타난 지 얼마 안 지난 5억5000만 년 전의 오스트레일리아 에디아카라 언덕까지, 시간을 거슬러가며 이야기를 풀어 간다.
2만 년 전엔 아일랜드의 대서양 연안부터 땅이 드러난 베링육교(지금의 베링해협)까지, 역대 최대 연속 생태계였던 ‘매머드 스텝’(매머드가 살기 좋은 춥고 건조한 초원 지역)이 존재했다. 큰 짧은얼굴곰은 뒷다리로 서면 어깨높이가 3m에 이르는 매머드를 1m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었다. 조랑말 같은 크기의 알래스카말이 서로 몸을 맞대며 추위를 달랬고, 아프리카 사자보다 10% 더 크고 덥수룩한 털이 있는 유라시아동굴사자가 이들을 노렸다.
책은 신생대의 6개 세(世·epoch)와 고생대와 중생대의 9개 기(紀·period)에 각기 한 장(章)씩을 할애한다. 유려한 문장으로 드러내는 과거의 모습은 그야말로 지금과는 ‘다른 세계(other lands)’다. 저자는 “멸종 뒤에도 생명은 복구되고 종 다양화가 뒤따른다.…종종 놀라울 정도로 다른 세상을 창조하지만 최소한 수만 년이 걸린다. 복구는 잃어버린 것을 대체할 수 없다”고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