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안경 상용화 기술로 증강현실(AR) 시장 개척하는 ‘딥파인 IT회사 18년 다니다 동료와 창업… ‘스마트폰 이후의 기기’에 관심 공공시설 안전점검 등으로 상용화 시작… 증강현실 콘텐츠 간편 제작 기술 확보 관광지나 복합몰 등 쓰일 곳 많아… “누구나 ‘포켓몬고’ 만드는 세상에 일조”
김현배 딥파인 대표이사가 지난달 25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본사에서 스마트 안경을 활용해 산업현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6월 초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프로’를 발표하면서 “디지털 콘텐츠가 물리적 공간에 있는 것처럼 상호작용을 한다”고 했다. 헤드셋을 쓰면 거실 벽면에 가상의 화면이 있는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 가상 화면에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표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처럼 디지털 콘텐츠를 임의의 현실 공간에 정확하게 배치하려면 기기가 현실 공간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른바 ‘공간 컴퓨팅’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내년 초 비전프로의 정식 출시는 공간 컴퓨팅 시대의 서막이 될 공산이 크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딥파인(대표이사 김현배)은 스마트 안경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이다. 스마트 안경을 통해 증강현실(AR)을 구현한다. 여러 부품의 조립 방법이라든지, 기기의 작동 방식을 담은 콘텐츠를 대상물 바로 위에 표시할 수 있는 공간 컴퓨팅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경기도는 이 회사의 기술을 활용해 도내에 흩어져 있는 공공 시설물의 안전점검에 활용하고 있다. 김현배 대표이사(42)는 “지금까지는 증강현실 콘텐츠를 만들려면 큰 측정 장비와 별도의 제작 프로그램이 필요했다”며 “딥파인은 누구나 손쉽게 증강현실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클라우드 서비스 형태로 제공한다”고 했다.
2007년 6월 29일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정보 습득의 주요 통로는 PC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뀌었다. 정보가 많이 흐르는 곳으로 부(富)도 옮겨 갔다.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다음 차례는 증강현실 기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 스마트 안경을 활용한 스마트한 안전관리
딥파인의 스마트 안경을 쓴 근로자와 안경에 보이는 정보들을 합성한 사진. 각종 밸브의 작동 상태와 점검 항목 등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딥파인 제공
딥파인이 비대면 업무지원 솔루션으로 출시한 ‘아론(ARON)’에는 영상 이미지와 문자를 인식하는 인공지능(AI) 기술, 실시간 영상통화에 증강현실을 결합하는 기술 등이 쓰인다. 복잡한 기기의 다양한 스위치가 있는 현장에 투입된 사람은 스마트 안경을 통해 돌려야 하는 밸브 위치는 물론이고 돌리는 방향까지 그림으로 안내 받을 수 있다. 또 기계 장치 내부의 여러 전선 가닥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서를 보는 것처럼 명확하게 구별해 볼 수 있다. 딥파인은 이 기술을 활용해 국내 유명 건설사에 원격 현장관리 체계도 구축해 줬다. 스마트 안경뿐 아니라 드론 등 다양한 기기와도 연동할 수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AR 세계 손쉽게 구축 가능”
2019 독일 국제 아이디어·발명·신제품 전시회(iENA 2019)에서 딥파인의 김현배 대표이사는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쇼핑 카트 및 상품 인식 방법’을 출품해 금상을 수상했다. 딥파인 제공
김 대표이사는 “내년에 애플이 비전프로를 내놓으면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도 차세대 확장현실(XR) 기기를 내놓으면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다양한 새 미디어가 나올 것”이라며 “이런 기기들을 연결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플랫폼을 내년 상반기에 출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플랫폼을 활용하면 복잡한 지하공간이나 대형 쇼핑몰, 대형 전시공간을 보다 정확하게 안내하는 것이 가능하다. 주최 측이 길 안내를 위한 이정표를 증강현실 형태로 만들어 두면 사용자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주변을 비추기만 하면 갈 방향이나 각종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딥파인 플랫폼을 활용하면 비전문가가 휴대전화로 실내공간을 촬영하면 실내 측정은 끝난다. 이후 딥파인의 클라우드 서버가 3차원 공간 정보를 자동으로 생성한다. 증강현실 콘텐츠는 플랫폼에 있는 저작도구로 코딩 없이 간편하게 생성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비전프로 이후 증강현실 기기의 시대가 열리면 현실 공간에 가상 콘텐츠를 융합하려는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내년 상반기에는 개인들이 자신의 집이나 상점에 증강현실 콘텐츠를 만들어 손님이나 고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
● 직장 동료였던 부인과 공동 창업
김 대표는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병역특례로 중소 IT 기업에 취업했고, 총괄이사 3년을 포함해 18년을 일하고 38세인 2019년에 창업했다. 직장 동료로 소프트웨어 디자인 업무를 하던 박혜은 씨와 공동 창업했다. 두 사람은 부부다. 같은 회사에서 12년 이상을 같이 일했다. 김 대표는 “오랫동안 창업에 열망이 있었다. 인공지능과 AR의 흐름이 막 생겨나는 시기에 ‘지금이 아니면 기회를 잡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창업을 실행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비전 인식 기술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회사를 관두고 6개월가량을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관련 분야를 공부했다”고 했다. 비전 인식 기술로 아마존고 같은 무인 매장에 적용할 시스템을 개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개발비 부담이 너무 커 창업 아이템을 조금 바꿨다. 김 대표는 “스마트폰 다음의 새로운 디바이스는 무엇일까를 자문하다가 AI 기술과 반도체의 고도화 속도 등을 볼 때 2011년 나왔던 ‘구글 글라스’의 고도화된 버전의 출시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고 했다. 어린 시절 즐겨 본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스마트 안경 ‘스카우터’ 같은 기기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창업 3개월 만에 비전인식 AI 기술 개발 관련 정부 연구과제를 2개나 따내면서 약 10억 원의 연구자금을 받은 것이 큰 힘이 됐다. 과제 신청 때 미리 프로토타입을 제시할 정도로 기술력을 과시했다. 최근 pre-A 시리즈로 33억 원을 투자 받았는데 현대자동차그룹과 SM엔터테인먼트 그룹 등이 참여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