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드론에 뚫린 ‘아이언월’… “韓 ‘스마트 철책’ 피해 北 AN-2기 침투할 수도”[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3-10-23 23:39:00

韓-이스라엘 ‘스마트 경계’ 분석
아이언월-과학화 철책… 감시-감지 장비 집중 설치
폭파-불도저에 아이언월 ‘폭삭’… 하마스, 폭파 뒤 지상 침투
韓 ‘과학화 철책’도 허점 노출



손효주 정치부 기자


“이스라엘 남부와 하마스 사이에 둔 철벽(iron wall·아이언월)입니다.”

2021년 12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분리하는 장벽 앞에 철책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더해진 형태의 벽이 설치됐다. 기존 분리장벽 앞에 설치된 높이 6m의 거대한 이 벽을 두고 베니 간츠 당시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아이언월’이라고 했다. 길이 65km에 달하는 이 벽의 완공 사실을 발표할 때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대원의 지상 침투를 막는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벽 공사에는 당시 환율 기준 1조3000억 원이 투입됐다. 사용된 강철 등 철만 해도 14만 t. 감시카메라와 레이더, 센서 등 첨단 스마트 장비 역시 대거 투입됐다. 아이언월은 카메라 등으로 하마스 대원의 움직임을 감시한다. 누군가 침투를 시도하면 철책에 가해지는 압력 등으로 이를 감지해 경보를 울려 사격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이다.》





● 폭파-불도저 밀기에 속절없이 무너진 ‘아이언월’
이스라엘이 ‘무적의 장벽’으로 여긴 아이언월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7일(현지 시간)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의해서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 보도와 이스라엘방위군(IDF) 발표 등에 따르면 무려 29개 지점에 걸쳐 파괴됐다. 벽과 지척에 이스라엘군 최전방 감시초소(GP) 격인 감시탑이 100여 m 간격으로 설치돼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이번 공격 당시 하마스는 우선 민간 드론에 폭발물을 실어 감시탑을 집중적으로 폭파했다. 이에 하마스의 지상 침투 등에 대응하는 사격 통제 시스템과 통신 기반 시설 등이 파괴됐다. 이들 체계를 무력화시킨 하마스 대원들은 모터가 달린 패러글라이더 등을 타고 아이언월을 가뿐히 넘어 대거 공중 침투했다. 하마스는 이 과정에서 로켓포탄 5000여 발을 쏟아부어 세계 최강의 방어 시스템으로 여겨지던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역시 무력화시켰다.

이후 하마스는 본격적으로 아이언월을 파괴했다. 폭발물로 장벽을 아예 폭파한 것. 파괴된 벽 틈으론 하마스 대원들이 오토바이까지 타고 이스라엘로 전격 질주했다. 뒤이어 불도저로 아이언월 일부를 밀어버렸다. 충분한 공간이 만들어지자 이번엔 트럭을 타고 대거 이스라엘로 침투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첨단 경계 시스템으로 불린 아이언월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아이언월을 무력화시킨 하마스의 침투로 시작된 이번 전쟁으로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23일 현재 14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군 관계자는 “아이언월은 결국 슬레이트 벽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 한국군 과학화 경계 시스템도 무용지물 논란
이번 이스라엘 사태를 계기로 북한을 지척에 둔 우리 군의 경계·방어 태세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특히 아이언월 무력화가 시사하는 점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 군도 ‘한국판 아이언월’을 운용 중이다. 군 당국은 북한군의 지상 침투에 대비해 2016년 전체 일반전방초소(GOP) 철책에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설치했다. 감시(근·중거리 카메라) 및 감지 시스템을 철책에 설치했고, 별도의 시설에 통제 시스템(전체 시스템 제어 및 녹화, 저장 등)도 설치했다. 전반적인 체계가 아이언월과 비슷하다. 국방부는 2016년 시스템 설치를 끝내며 “적은 병력으로 넓은 지역을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우리 군을 첨단 강군으로 거듭나게 해줄 것이란 군의 자평이 무색하게도 이 시스템은 잊을 만하면 비판의 중심에 서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2020년 3월 강원 동부전선 GOP에서 발생한 ‘점프 귀순’ 사건이다. 당시 귀순자가 철책을 넘었는데도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던 것. 이 외에도 바람으로 인해 오경보가 울리는 등 이 시스템의 오작동 논란은 꾸준히 이어졌다.

잦은 오경보 등 문제가 계속되자 군은 경계 병력의 피로도를 해소해 경계 작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최신 기술이 적용된 카메라와 인공지능(AI) 영상 분석 기술 등을 적용하는 시범사업도 실시 중이다. 국방부가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과학화 경계 시스템 성능 개량 사업은 현재 통제 체계에 AI 기술을 적용해 지능형 영상 분석 및 경보 전파 구현을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육군은 ‘제2의 점프 귀순’을 막기 위한 기술 개선책에 대한 질의에 “(철책) 광망은 직접 센서로, 광망에 접촉해 힘을 가했을 경우에만 경보하는 기술적 한계가 있어 직접 센서와 간접 센서를 복합 운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문제는 기존 시스템에 AI 기술을 적용하는 등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만으로 북한군의 집중 침투를 막아낼 수 있느냐는 거다. 자칫 이 시스템에 대한 맹신이 경계 태세만 느슨하게 만들 거란 지적까지 나온다. 김승겸 합참의장도 12일 국회 국방위원회의 합동참모본부 대상 국정감사에서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한 이유 등을 묻는 질문에 “과학화 체계에 대한 과신, 방심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본다”고 했다.

‘점프 귀순자’가 지난해 1월 GOP 철책을 넘어 재입북했을 당시 과학화 경계 시스템 경보는 정상 작동했다. 이에 출동한 초동 조치 부대는 이상 없다고 판단하고 철수했다. 결국 이런 시스템 도입에만 의존해, 과학적 감시 사각지대를 없애는 노력이나 경계 병력의 작전 기강을 바로잡는 노력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이스라엘처럼 기습에 당할 가능성이 크다.

● “한국군, 철책 과학화에도 경계 병력 유지…이스라엘과 달라”
군 안팎에선 하마스가 대규모로 침투한 이번 이스라엘 사례를 우리 환경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일단 대치 환경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남북 사이에는 폭 4km에 달하는 비무장지대(DMZ)가 있지만 가자지구 및 이스라엘 접경 지역 일대에는 이런 완충 지대가 없다. 하마스가 아이언월을 파괴한 뒤 곧바로 이스라엘 민간인들에게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구조다.

한반도에선 북한군이 침투를 시도할 경우 DMZ를 지나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설치된 철책을 무력화한 뒤에도 군사분계선(MDL)에서 5∼20km 일대에 설정된 민간인통제선까지 뚫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민간인에 대한 공격이 가능하다.

군의 경계 수준도 다르다. 이스라엘은 아이언월 설치 후 소규모 병력이 광범위한 지역 경계를 담당하는 것으로 작전 체계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달리 우리 군은 서부전선 GOP 철책 기준 1km 구간마다 여전히 경계 병력 수십 명이 근무하고 있다. 최전방 지역 사단장을 지낸 예비역 소장은 “우리는 철책 인근 병력 배치 밀도가 이스라엘과 비교가 안 된다. 이들은 철책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즉각 출동해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병력”이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는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병력을 대체한 것이 아니라 병력의 경계력을 보강하는 개념”이라며 “GOP 경계 작전 체계는 과학화 경계 시스템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장비와 병력에 더해 시스템을 복합 운용하는 체계”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 같은 차이가 있다고 해서 방심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계 체계 덕분에 대규모 지상 침투는 어렵더라도 모터패러글라이더나 저고도 침투용 AN-2기 등 레이더로 포착이 어려운 비대칭 전력을 이용해 철책을 넘어 대규모로 공중 침투해올 가능성은 열려 있다. 군 당국도 북한이 AN-2기 300여 대를 활용해 1, 2, 3차에 나눠 100여 대씩을 순차 침투시키는 방식의 ‘파상공격’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2016년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가하에 실시한 청와대 침투 훈련 당시 패러글라이더를 활용했듯 북한군은 이러한 방식으로 특수부대원들을 대거 침투시킬 수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AN-2기의 경우 골프장 등 넓은 평지에 착륙을 시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각종 장치 등을 배치해 놓는 등 침투 대비 계획은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한미 연합 자산을 이용한 밀착 감시와 정보 수집 등으로 북한의 침투 계획을 사전에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손효주 정치부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