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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치료기기 내달 첫 처방…실효성 등 우려

입력 | 2023-10-25 03:00:00

식약처 허가 받은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솜즈의 혁신 의료 기술 연구 계획서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솜즈는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 등 6개 대형 병원에서 혁신 의료 기술의 임상적 근거 창출을 위한 연구 수행 단계에 돌입한다. 사진은 솜즈 애플리케이션.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디지털 치료기기가 이르면 11월 병원에서 첫 처방이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건강보험 재정 낭비, 실손보험 다툼의 여지, 먹튀 논란까지 문제점을 짚어 봤다.





산업계, 의료 시장 우선 진입이 중요해
에임메드가 개발한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 솜즈는 인지행동 치료 애플리케이션이다. 수면 제한법, 수면 습관 교육법 등 기존에 의사가 불면증 환자에게 생활 습관 개선 목적으로 교육하던 것을 모바일로 6∼9주간 제공한다.

솜즈와 같은 디지털 치료기기는 아직 안전성·효과성을 인정받지 못해 정식 의료기기로 등록되지 않은 제품이다. 하지만 현 정부가 ‘바이오·디지털 헬스 글로벌 중심 국가 도약’을 국정과제로 발표하면서 관련 기관들이 규제 개선안을 내놓았다.

이런 배경에는 관련 업계의 지속적인 주장이 있었다. 또 다른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 업체인 웰트 관계자는 “식약처 품목 허가 이후에도 급여 여부 결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세계시장에서 디지털 헬스케어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우선 빠르게 의료 시장에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업계는 “디지털 치료기기는 신약과 달라 부작용 위험이 크지 않다. 병원에서 당장 처방해도 문제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행법상 디지털 치료기기 같은 혁신 의료기기는 식약처의 품목 허가를 받고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 평가 과정을 거친다. 안성복 이화여대 융합보건학과 교수는 “디지털 기기들은 부작용을 크게 일으킨다기보다 환자에게 썼을 때 재정을 투입할 정도의 실제 효과를 보이느냐를 검토하는 것”이라며 “미국에서도 비슷한 디지털 치료기기가 보험 급여 제한으로 대중화에 어려움을 겪고 파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 페어 테라퓨틱스는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를 출시하고 올해 매각 절차를 밟은 바 있다.





효과 입증 못 해 제품 퇴출당하면 먹튀 논란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최근 디지털 치료기기의 ‘선진입·후평가’ 개선안을 내놓았다. 개선안에 따르면 식약처 허가를 받은 디지털 치료기기는 급여·비급여를 신청하고 우선 의료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대신 병원에서 처방이 이뤄지는 최대 4년 동안 안전성·유효성을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 임상 근거를 갖춰야 한다.

디지털 치료기기는 내년부터 1차 의료기관에서도 처방이 이뤄질 예정이다. 이로운 인하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상급 병원은 좀 낫지만 동네 병원은 상황이 다르다. 과거 유방 초음파 검사도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면서 공단에서 확보한 1년 치 예산이 단 몇 개월 만에 바닥난 적이 있다. 일부 병원에서는 건보 급여를 받아내기 위해 병원 내 모든 여자 간호사에게 초음파 검사를 했다는 것은 알려진 이야기”라고 말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생사가 걸린 암 환자들도 암 치료제가 급여가 안 돼서 1년이면 수천만 원씩 치료비를 부담하는 환자들이 많다”라며 “건보 재정이 어렵다면서 건강관리 애플리케이션과 다를 바 없는 기기에 건보 재정을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이로운 교수는 “비급여로 처방되더라도 문제는 있다”며 “비급여 진료를 받았을 때 많은 환자가 실손보험을 신청하는데 디지털 치료기기 보험 청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먹튀’ 논란도 있다. 매출만 올리고 4년 뒤 평가에서는 효과도 입증 못하고 문 닫는 업체도 있으리라는 것. 의료계와 환자 단체는 “효과도 입증되지 않은 치료기기 도입 목적이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건보 재정을 쓰지 말고 중소벤처기업부 예산으로 해결하라”며 날 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98명, 68명 환자 대상 임상 결과로 식약처 허가
식약처는 업체가 제출한 임상 결과로 허가 여부를 판단한다. 디지털 치료기기같이 사용해 본 적 없는 의료기기는 허가 기준도 모호하다.

솜즈는 만성 불면증 환자 총 98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으로 식약처 허가를 받아냈다. 솜즈를 사용한 환자 49명과 일반적인 불면증 인지행동 개선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 환자 49명으로 나눠서 시험을 진행했다. 중간에 탈락한 환자를 제외하면 각각 42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결과, 누워 있는 시간 대비 총수면 시간은 솜즈를 사용한 환자군에서 16.9%, 사용하지 않은 환자군에서 9.4% 개선됐다.

솜즈와 비슷한 원리로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 식약처 허가를 받은 웰트의 ‘웰트 아이’는 그보다 적은 68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했다. 유효성 평가는 웰트 아이를 사용한 환자 28명, 모의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 환자 26명을 대상으로 했다. 웰트 아이를 사용한 환자군에서는 15.14%의 수면 효율 개선 효과를 나타냈으며 비교 환자에서는 6.86% 개선 효과를 보였다. 안성복 교수는 “통상 p값이 0.05보다 작으면 유의한 결과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웰트 아이의 통계적 유의성을 보여주는 p값은 ‘<0.042’였다.

S전자의 헬스케어 관계자는 “협업이나 투자 유치를 위해 찾아오는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들이 많다”라며 “처음에는 혁신적인 기술인 듯 보이지만 논의 과정에서 추가 자료 요청을 하면 기술력이나 특별한 것이 없어 협업이 무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에임메드는 솜즈의 혁신 의료기술 실시 승인을 받고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 등 6개 대형 병원에서 솜즈의 처방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의학 연구 윤리심의위원회(IRB) 심의가 끝나고 보험 심사 등 제반 절차를 마무리하면 다음 달 말 첫 처방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에임메드 관계자는 “솜즈 혁신의료기술 신청에서 승인까지 긴 시간이 흘렀다. 조언과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면서도 산업계의 의견이 받아 들여지기를 바랬다”고 말했다.

반면 웰트는 아직 의학 연구 윤리심의위원회 심의 신청도 하지 않은 상태다.

이재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원장은 “산업계 요구를 반영해 디지털 치료기기가 의료 현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개선책을 강구하고 있다”며 “하지만 업계도 의료계와 환자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과학적 임상 근거 마련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