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간 100명 숨져… 성적 공개 금지 등 대책 마련
‘인도판 대치동’으로 부를 수 있는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 코타에서 10년 간 성적 스트레스 등으로 10대 학생 적어도 100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역대 가장 많은 25명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라자스탄주 정부는 학생 성적 공개 금지 같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여전히 엄격한 신분 제도(카스트) 속에서 교육이 신분 상승 최고 수단이 된 인도 사회 씁쓸한 단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BBC는 23일 “자녀의 명문대 합격은 인도 부모들의 최고 목표”라며 “명문 의대와 공대 입학은 인도에서 고소득자가 되는 지름길”이라면서 코타를 소개했다. 코타는 대학 입시 경쟁이 치열한 인도 최대 학원가로 대형 학원 12곳과 50개 이상 작은 학원이 모여 있다. 거리 곳곳에는 유명 고교나 대학 합격생 이름, 사진, 등수가 적힌 대형 학원 광고판이 서 있다. 매년 전국에서 20만 명 넘게 몰리는 학생들은 3500여 개 호스텔이나 임대 숙소 3.3㎡(1평) 남짓한 방에서 살면서 하루 14시간씩 공부한다. 이 중에는 13세도 있다. 학원비는 연간 10만 루피(약 163만 원)로 인도 서민의 연봉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 코타에 있는 한 학원에서 수백명의 학생이 모여 수업을 듣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올 8월 18세 아다르시 라지 군은 의사가 되고 싶어 농촌에서 올라와 이렇게 혼자 살다 성적을 비관하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의대 입학시험에 세 번 떨어졌다는 21세 학생은 BBC에 “비싼 학원에서 공부하면 합격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계속 떨어져 불안감이 커졌고 두통과 가슴 통증이 심해졌다”며 “두 번째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는 자살 충동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더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꼈다”며 “(농촌에서 힘들게 학원비를 보내주시는) 부모님 돈을 낭비했고 명예마저 떨어뜨렸다고 생각해 압박감이 심했다”고 했다. 이 학생은 “다행히 지금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코타의 유명 학원 모션 에듀케이션 니틴 비제이 전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학생들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다”고 진단했다. 인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2021년 학생 1만300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20년보다 4.5% 증가한 것이다.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 코타에 있는 학원 광고. 학생들의 점수와 사진이 공개돼 있다. 페이스북 캡처
라자스탄주 정부는 지난달 29일 14세 이하 학생에게 학원 입학을 권유하지 않고 시험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등의 지침을 발표했다. 앞서 올 6월에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학생들을 식별하는 11명의 경찰 팀도 꾸려졌다. 경찰 찬드라쉴 씨는 “행동이 갑자기 바뀌는 등 위험 신호가 보이는 학생들과 이야기하고 이들 부모와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원 강사나 학생 숙소 직원 등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 교육을 받도록 했고 학생이 언제든 학원비를 환불받을 수 있는 조항도 마련하도록 했다.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