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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논점/정임수]국회 파행에 ‘워크아웃법’ 또 아웃… 한계기업 줄도산 덮치나

입력 | 2023-10-25 00:06:00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일몰




《부산 지역의 중견 조선업체 대선조선이 이달 12일 주채권은행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했다. 수주 물량이 쌓였는데도 선박 인도가 지연되면서 일시적인 자금난에 처했기 때문이다. 조선업계가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 수주 호황을 맞았지만, 중소업체 중엔 극심한 인력난과 원자재 가격 급등을 견디지 못하고 유동성 위기에 빠진 곳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대선조선처럼 워크아웃을 활용해 신속하게 경영 정상화를 시도할 기회가 사라졌다. 워크아웃 제도의 법적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국회의 태만으로 16일부터 효력을 상실해서다. 이제 위기에 몰린 기업이 기댈 수 있는 구조조정 수단은 훨씬 더 까다롭고 강도 높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만 사실상 남았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 위기가 한국 경제를 다시 덮친 가운데 구조조정 제도의 공백을 불러온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기촉법의 재입법을 서두르는 동시에 20여 년간 반복돼 온 법률 일몰과 재연장의 논란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국회 파행에 또 없어진 ‘워크아웃법’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 기업 구조조정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면서 대중화된 워크아웃이 한국으로 건너온 건 외환위기 때다. 외환위기 여파로 기업들이 줄도산하자 2001년 한시법(유효기한이 정해진 법)으로 기촉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을 근거로 워크아웃은 채권단 75% 이상이 동의하면 채무 조정과 신규 자금 지원 등을 통해 부실기업의 경영 정상화를 유도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운영돼 왔다. 한시법이 5차례 연장을 거듭하면서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은 법원이 주도하는 법정관리와 더불어 기업 재도약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활용됐다.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하이닉스, 현대건설, 금호아시아나 등이 워크아웃을 거쳐 되살아났다.

금융위원회가 2012∼2021년 기업은행에서 선정한 부실징후기업 1348곳을 분석한 결과, 워크아웃으로 기업을 정상화시킨 성공률은 34.1%인 반면 법정관리 성공률은 12.1%에 그쳤다. 정상화에 걸리는 기간도 워크아웃이 3.5년으로 통상 10년 정도 걸리는 법정관리보다 짧았다. 워크아웃이 보다 신속하고 유연하게 구조조정을 지원하는 게 입증된 셈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수주 계약 해지 사유에 해당되고, 수출입 기업의 경우 신용장 거래가 중단돼 정상적인 영업 활동을 할 수 없다. 금융채권뿐만 아니라 일반 상거래채권도 동결돼 협력업체 등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만만치 않다. 반면 워크아웃은 이런 부작용 없이 상거래를 지속할 수 있다. 기업들이 법정관리를 ‘최후의 수단’으로 여기는 이유다.

워크아웃의 이런 장점 때문에 올해도 기촉법 시한 만료를 앞두고 여야 의원들이 각각 일몰을 연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가 6, 7월 두 차례 법안을 논의하고는 개점휴업에 들어가면서 이 법은 일몰을 피하지 못하고 또 없어지고 말았다.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기촉법 관련 논의가 내년 4월 총선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기촉법 공백기에 중견기업·건설사 줄줄이 무너져

금융당국은 기촉법 재입법을 추진하는 동시에 전 금융권이 참여하는 ‘구조조정 자율협약’을 가동해 법의 공백을 메우기로 했다. 과거 기촉법이 일몰 폐지됐을 때도 자율협약으로 워크아웃을 진행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자율협약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데다 채권자 범위도 모든 금융채권자가 아니라 채권금융회사로 한정돼 한계가 분명하다.

올해를 제외하고 기촉법이 일몰 기한을 넘겨 효력을 잃은 경우는 4차례 있었다. 가장 긴 공백은 2006년 1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약 2년이다. 이때 6개 기업이 자율협약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4곳이 채권단 간 이견으로 실패했다. 특히 중견 디스플레이 회사였던 현대LCD는 법정관리를 거쳐 중소업체에 일부 자산이 매각됐다가 결국 청산됐다. 휴대전화 제조업체 VK모바일도 채권단 합의에 난항을 겪다가 최종 부도를 맞고 청산됐다.

2011년 5개월 동안 기촉법이 실효됐을 때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맞물려 삼부토건·동양건설·월드건설·LIG건설 등 중견 건설사들이 줄줄이 법정관리로 직행했다. 이 중 일부 건설사는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대규모 기업어음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부실을 떠넘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올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경기 침체와 금리·물가 상승 여파로 경영난에 처한 기업이 늘고 있어 워크아웃 중단의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는 한계기업이 지난해 말 기준 3900개를 웃돈다. 전체 기업(외부감사 대상 비금융 기업)의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5년 만에 가장 높은 비중이다.

금융감독원의 신용위험평가 결과,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가 필요한 부실징후기업은 185개로 1년 새 25개 늘었다. 자금난이 영세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확산되면서 1∼8월 어음부도액은 3조6200억 원을 넘어섰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1조9000억 원)이나 레고랜드 사태가 있었던 지난해(2조2500억 원)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금융권과 산업계에서 “구조조정 골든타임을 놓쳐 도산하는 기업이 없도록 재입법을 서둘러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는 이유다.





● “기업에 다양한 구조조정 선택지 줘야”

기촉법 일몰 기한이 돌아올 때마다 법 존속 여부를 두고 사회적 논란은 반복되고 있다. 금융위는 한시법인 기촉법을 연장하는 것에서 나아가 상시화 검토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법정관리를 주도하는 법원은 기촉법을 폐지하고 사법부 영역에서 구조조정이 일원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조조정 주도권을 둘러싸고 밥그릇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이번에도 국회 정무위에 기촉법 연장 반대 의견을 냈다. 워크아웃에 동의하지 않는 채권자에 대해 재산권 침해 등 위헌 소지가 있고, 금융채권자 권한이 우선시되면서 채무기업이 사실상 배제된다는 것이다. 기촉법이 관치금융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비판도 오래된 논쟁거리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그동안 수차례 법 개정을 통해 관련 문제를 대부분 해소했다는 입장이다. 원치 않는 채권자는 반대매수청구를 통해 이탈할 수 있고, 기업이 신청해야만 워크아웃을 개시할 수 있으며, 금융감독원장의 채권행사 유예 요청 권한 등도 없앴다는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의 장단점이 뚜렷한 만큼 기업들에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상황에 맞게 구조조정 수단을 정하도록 하는 게 맞다”며 “선택지를 오히려 없애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도 법원 밖 구조조정을 다양화하는 추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정책 옵션’ 보고서에서 법정 외 구조조정 활용을 높일 것을 권고했다. 그러면서 워크아웃 제도를 근거로 한국의 위기대응 능력을 60개 대상국 중 가장 높게 평가했다.

일본, 미국, 영국 등 선진국처럼 제3의 구조조정 기관이 채권단과 채무자 입장을 공정하게 조율하면서 기업 회생을 신속하게 돕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한은은 ‘기업 채무조정제도 개선에 관한 글로벌 논의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법원 외에 공정하고 중립적인 제3자 역할을 하는 도산 실무가를 육성해야 한다. 중소기업 맞춤형 채무조정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제도가 마련되기도 전에 기존 워크아웃 제도를 없애는 건 위기에 처한 기업들의 재기 발판을 없애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회와 정부는 서둘러 재입법을 통해 워크아웃 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 민생을 챙기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