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A 씨는 지난해 학교에서 무상으로 나눠 준 태블릿PC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집에서 태블릿을 끼고 사는 딸이 못마땅하지만 학습용이라고 하니 휴대전화나 컴퓨터처럼 쓰지 못하게 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유해 앱, 유해 동영상 등은 차단된다고 하지만 유튜브나 웹툰을 보는 것만 해도 신경 쓰인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52억 원의 예산을 들여 중학교 1학년생 7만여 명에게 태블릿PC ‘디벗’을 나눠줄 예정이다. 디벗은 ‘디지털’과 ‘벗(친구)’의 합성어다. 하지만 A 씨와 같은 걱정을 하는 학부모들의 반발이 적지 않아 배포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말까지 ‘학생 개인정보 활용 동의서’를 받고 이달 안에 모두 배포할 계획이었으나 90% 이상의 동의서를 받아 배포가 이뤄지고 있는 곳은 지난주 기준으로 전체의 3%에 불과한 실정이다.
▷총 3000억 원 넘는 예산이 책정된 디벗 배포는 ‘1인 1스마트기기’의 교육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실시하는 정책이다. 내년 2학기에는 고교 1, 2학년생, 2025년 1학기에는 초교 3, 4학년생에게 디벗을 지급할 계획이다. 교육청은 원래 디벗을 집에 가져가 ‘하교 후 교육’에도 쓰도록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불만이 커지자 시교육청은 24일 방침을 바꿨다. 초등생의 경우 학교에 놔두도록 하고, 중고생은 학교와 학부모 등의 협의를 통해 집에 가져갈지 정하도록 한 것. 하지만 하교 후 학습이 어려워진다면 원래 정책이 반쪽짜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10대 자녀를 둔 부모치고 휴대전화 등 디지털기기 사용 문제로 갈등을 겪지 않은 경우를 찾기 어렵다. 교육청은 디지털기기를 무료로 나눠주면 당연히 받겠지 하는 안일한 인식을 가졌겠지만 자녀와 ‘디지털 불화’를 겪는 학부모로선 달가울 리가 없다. 외국도 집중력과 문해력 저하를 이유로 학교에서 디지털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나라가 느는 추세다. 우리도 과연 디지털기기를 나눠주는 것이 디지털 교육의 첫걸음인지, 디벗 같은 정책이 예산 낭비의 소지는 없는지 근본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서정보 논설위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