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서쪽 골목길에서 인파에 갇혔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진 김초롱 씨(33)는 “이번 핼러윈 때 이태원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김 씨는 인터뷰 내내 “일상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표현을 반복했다.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것조차 힘들었던 자신의 경험을 남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김 씨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 저 역시 타인의 일상을 지켜주고 싶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참사 1주기를 맞아 생존자와 유가족, 추모 공간 자원봉사자,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회 되길”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6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시민합동분향소에서 서울시 규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영정을 어루만지고 있다. 2023.2.6/뉴스1
김남희 씨(49)와 가족들은 참사 당시 목숨을 잃은 딸 신애진 씨(사망 당시 25세)의 모교인 고려대에 19일 장학기금 2억 원을 기부했다. 그는 “딸의 장례식장에 많은 친구들이 왔다. 부의금으로 딸이 꿈꿨던 일을 대신 했을 뿐”이라고 했다.
김 씨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딸의 모습을 기억해 주면 좋겠다며 대학 졸업사진을 건넸다. 또 “핼러윈 축제가 이태원에서 계속되길 바란다. 이태원을 폐쇄하고 막는 건 희생자들이 원하는 일도, 그들을 위한 일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이태원 됐으면”
선우 씨는 “피해자 중 가족이나 지인은 없다”면서 “기성세대로서 부채감을 느껴 매일 참사 현장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또 “참사 당시 어른들이 아무것도 못 해줬다는 생각에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참사 당시 현장에서 목이 터져라 외치며 인파를 안내하다 결국 차가운 시신을 옮겨야 했던 경찰에게도 1년 전 그날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당시 이태원파출소에서 근무했던 A 씨는 올해 다른 파출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참사 전까지만 해도 이태원파출소는 훈장이자 자랑이었다”며 “하지만 참사 발생 후에는 이태원파출소에서 일한다는 걸 숨기게 됐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A 씨는 “이태원이 다시 예전처럼 빛나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예전의 이태원은 자유로운 곳, 젊음의 상징이었다”며 “이곳이 추모와 애도의 공간으로만 남는 건 희생자들도 바라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대신 사람 살려야 하니 음악 꺼 달라고 할 필요가 없고, 길 비켜 달라고 소리칠 필요가 없는 더 안전한 곳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최유리 경인교육대 초등교육과 졸업
김영우 서울대 언론정보학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