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하면 독약을 마시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년·사진)은 그 이미지를 후대에 영원히 각인시켰다. 궁금해진다. 19세기 화가는 어떻게 고대 철학자가 죽는 모습을 이리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었을까?
그림에서 소크라테스는 제자와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침대에 똑바로 앉아 한 손은 독배를 받아들고 다른 한 손은 허공을 가르며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태연하게 가르치고 있다. 정작 죽음을 앞둔 철학자는 평온하고 침착한 반면, 벗들은 이 상황을 비통해하고 있다. 스승에게 독배를 건네는 제자는 괴로움에 얼굴을 가렸고, 또 다른 제자는 스승의 무릎에 한 손을 얹고 마지막까지 경청하고 있다. 침대 끝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남자는 플라톤이다.
다비드가 고대 철학자가 죽는 장면을 이토록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건 플라톤 덕분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생전에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관한 일화나 철학은 대부분 플라톤이 쓴 글을 통해 알려졌다. 그중에서도 ‘파이돈’에 나오는 마지막 장면을 다비드는 그림으로 탁월하게 표현해냈다.
소크라테스는 신성 모독과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로 아테네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탈옥할 수도 있었지만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영혼의 불멸을 믿었기 때문이다. 신념과 믿음.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흔들리지 않은 이유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