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초안 만들었지만 배포 못해 행안부 “국회서 법개정 논의 지연”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됐지만 정부가 ‘주최자 없는 행사’의 인파 관리 매뉴얼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29일 참사 직후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최자 없는 자발적 행사에 적용할 인파사고 예방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지만 국회에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탓에 현실화되지 않은 것이다.
25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참사 이후 올 4월경부터 외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주최자가 없는 경우’를 포함한 인파 안전관리 매뉴얼 초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아직 일선 경찰서에 배포하지 못하고, 인파사고 우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일일이 공문을 보내 안전조치를 당부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재난안전관리법상 주최자 없는 행사에 대한 안전관리 주체가 모호해 매뉴얼을 배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청의 상위 기관인 행정안전부의 매뉴얼 개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 개정을 추진했지만 재난안전관리법 개정안이 여야 정쟁 속에서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아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법안은 지난달 20일에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문턱을 넘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관련 법안을 발의한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특별법 제정이 우선이라는 야당과 개정안 처리를 먼저 해야 한다는 여당의 견해차 때문에 시간이 오래 소요됐다”고 말했다.
‘완료’했다는 안전과제 8건 아직 ‘추진’중… “보여주기식” 지적
[이태원 참사 1년]
인파 매뉴얼 아직 없어
국회도 이태원 관련 법 처리 손놓아
46개 법안중 본회의 통과 단 1건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국가 안전 시스템 개편 역시 진행이 더디긴 마찬가지다.
또 ‘완료 후 계속 추진’으로 분류된 대책 8건은 실제로는 완료와 거리가 먼 상태였다. 예를 들어 소방청이 내놓은 ‘보고체계 및 상황전파 개선’ 과제에 대해 행안부는 “차세대 119통합시스템을 개발 중”이라면서도 ‘완료 후 계속 추진’으로 분류했다. ‘적극행정 면책 활성화’ 역시 핵심인 법안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홍보 영상을 제작 송출했다면서 ‘완료 후 계속 추진’으로 분류했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이태원 참사 1년을 앞두고 급하게 ‘완료’ 딱지만 붙인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현장 작동 여부를 지속 점검해야 할 과제는 완료 및 계속으로 분류했다”고 해명했다.
국회도 이태원 참사 관련 법안 처리에 손을 놓고 있었다. 동아일보가 재난안전관리법 개정안 처리 실태를 전수분석한 결과 지난해 11월 이후 발의된 개정안 중 이태원 참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법안 46개 중 본회의를 통과한 건 단 1건에 불과했다. 앞서 상임위에서 대안반영 폐기된 법안 19건을 제외하더라도 여전히 26개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지자체 폐쇄회로(CC)TV를 국가재난관리 정보통신 체계와 연계하도록 한 법안은 발의 후 3개월이 지났지만 소관 상임위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사회재난에 ‘다중운집 인파사고’를 추가하는 법안도 여야가 각각 발의했지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김지윤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졸업
장원영 인턴기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졸업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