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표류’ 해법, 해외에서 찾다] 〈3〉 ‘응급실 북새통’ 없는 독일
지난달 22일 방문한 독일 귀터슬로시 중앙구조관리국 상황실. 상황실 직원이 ‘병원 및 환자 이송 관리 시스템’을 보며 각 병원의 병상 및 의료진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 시스템에서 가로축은 병원을, 세로축은 질환을 나타낸다. 각 질환과 병원이 만나는 칸이 녹색이면 ‘치료 가능’, 빨간색이면 ‘치료 불가능’을 뜻한다. 노란색은 ‘정보가 업데이트 중’이라는 뜻이다. 귀터슬로=특별취재팀
‘심장마비·외상→ 귀터슬로 병원→ 녹색(치료 가능한 의료진 및 병상 있음).’
지난달 22일 독일 서부 귀터슬로시 중앙구조관리국 상황실에 들어서자 중앙에 설치된 대형 화면이 먼저 보였다. 심장마비나 외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비롯한 각 질환별로 어느 병원에 현재 이를 치료할 의료진이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병원 및 환자 이송 관리 시스템’이다.
이 화면에는 응급환자들이 탄 구급차가 어느 병원으로 가고 있는지 동선이 떴고, 심지어 상황실 아래 18대의 구급차 중 어떤 구급차가 현재 수리 중인지도 알 수 있었다. 상황실 직원 4명이 이 화면을 보며 분주히 통화를 했다.
기자가 이런 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병원 및 환자 이송 관리 시스템’에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표시가 떴다. 응급환자의 가족이 112(우리나라의 119)로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중앙구조관리국 상황실로 연결됐다. 심장마비 환자였다. 직원은 환자의 상태와 위치 등을 묻고 응급처치법을 조언하며 안심시켰다.
중앙구조관리국은 환자의 응급도를 엄격히 구분해 꼭 필요한 환자만 대형병원으로 보낸다. 나머지는 소형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한다. 이 때문에 중증 응급환자의 진료가 지연되는 일이 드물다. 독일 전역에는 이러한 중앙구조관리국이 주민 10만∼60만 명당 한 곳씩 설치돼 응급환자 이송을 돕는다. 내과 전문의 볼프강 슈미트 씨는 “중앙구조관리국이 지역 내 병상이나 의료진을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한국과 같은 ‘응급실 뺑뺑이’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 응급의료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응급실 과밀화’다. 중증환자와 경증환자, 보호자가 뒤섞여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이는 컨트롤타워 없이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야 하는 응급의료 시스템에 기인한다. 거리를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이 직접 전화를 돌려가며 환자를 수용해줄 병원을 찾다 보니 효과적으로 환자를 배분하기는 불가능하다. 또 구급대원이 이송하는 환자의 중증도를 판단했더라도 환자가 대형병원을 가겠다고 하면 거부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獨, 컨트롤타워 허락 없인 응급실 못가… 韓, 환자 절반이 경증
獨 컨트롤타워, 최적 병원 찾아 안내
병원, 환자도착 10분전 치료준비 마쳐
韓, 구급대원이 환자분류-병원 문의
‘경증, 응급실 이용 제한’ 진척 없어
병원, 환자도착 10분전 치료준비 마쳐
韓, 구급대원이 환자분류-병원 문의
‘경증, 응급실 이용 제한’ 진척 없어
지난달 19일 독일 함부르크시 아스클레피오스 병원 응급실에 경증환자 통로로 2명의 환자가 들어오고 있다. 독일은 중증-경증환자를 통로부터 분리해 응급실 과밀화를 막고 있다. 함부르크=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 응급실 ‘컨트롤타워’ 둔 셈
중앙구조관리국 상황실 직원은 응급구조사가 업데이트하는 환자의 상태를 보면서 인근 병원 병상 현황과 의료진 근무 여부를 확인해 ‘최적의 병원’으로 이송시킨다. 일단 구급차를 탄 환자는 어느 병원으로 갈지, 응급실에 갈지 등을 선택할 수 없고 중앙구조관리국의 안내에 따라야 한다.
● 중-경증 환자 분류로 응급실은 평온
병원에서도 환자 이송 전 중앙구조관리국이 △중증 △1차 처치가 필요한 중증 △경증 △도움이 필요한 환자(제 발로 걸어 들어온 환자)로 나눈 것에 맞춰 철저히 진료 동선을 분류하고 중증·응급환자부터 진료한다.
지난달 19일 찾은 함부르크시 아스클레피오스 병원 응급실에는 당뇨병 환자인 중년 여성이 발이 퉁퉁 부은 채로 구급차에 실려 왔다. 경증환자 전용 통로로 들어온 이 환자는 미리 대기 중이던 의료진의 진찰을 받고 10여 분간 통로에 대기했다가 경증환자 치료실로 이동했다. 이런 엄격한 환자 분류로 응급실은 붐비지 않았고, 중증환자가 먼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스클레피오스 병원 응급실 토비아스 슈트라파타스 총책임자는 “중앙구조관리국은 어느 병원에서 환자가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고 말했다.
또 중앙구조관리국이 환자를 보냈다면 독일 병원은 반드시 환자에게 1차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 병원 응급실 토비아스 셰퍼 부과장은 “중앙구조관리국에서 넘어온 환자의 1차 응급처치는 병상이 있든, 없든 간에 의무”라고 말했다.
● 구급대원이 ‘컨트롤타워’부터 운전-응급처치 다 하는 한국
독일과 달리 우리나라 응급실은 항상 포화 상태다. 중앙응급의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권역 및 지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한 환자는 525만171명이다. 그중 249만9728명(47.6%)이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KTAS)에서 가장 낮은 4, 5단계로 평가됐다. 증상이 경미하거나 아예 응급한 상태조차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런 환자들로 대형병원 응급실은 늘 ‘북새통’이다.
독일의 중앙구조관리국이 중증-경증 환자를 분류해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안내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중증-경증 환자를 분류한다. 문제는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운전, 응급처치를 하면서 동시에 환자 분류를 하고 전체 병상과 의료진 상황을 파악하는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구급대원들이 수십 통의 전화를 걸어 병상과 의사를 찾는 상황에서 체계적인 이송이 이뤄질 리 없다. 3월 19일 ‘대구 여학생 표류’ 사건 당시 응급환자 정보 공유 시스템의 부재로 경북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중증 응급환자 3명이 동시에 몰렸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2018년 12월 ‘제3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에 “권역응급의료센터에 경증환자의 방문을 억제하는 시범사업을 벌이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올 5월에는 정부·여당이 다시 “경증환자의 대형병원 응급실 이용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이후 진척은 더디고,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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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터슬로=특별취재팀▽팀장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이지운 김소영 이문수 기자(이상 정책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