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이승과 저승으로 갈린 십 년. 생각 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네.
천 리 밖 외로운 무덤, 내 처량한 심사 호소할 길 없구나.
우리 만난대도 알아보지 못하리. 얼굴은 세속의 때에 절고, 귀밑머리엔 서리 내렸으니.
지난밤 아련한 꿈결 속 문득 찾아간 고향. 작은 창가에서 치장하고 있던 당신.
돌아보고도 아무 말 않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지.
생각건대 해마다 애간장 태웠을 그곳. 달 밝은 밤, 애솔나무 언덕.
(十年生死兩茫茫. 不思量, 自難忘. 千里孤墳, 無處話凄凉. 縱使相逢應不識, 塵滿面, 鬢如霜. 夜來幽夢忽還鄉. 小軒窗, 正梳妝. 相顧無言, 惟有淚千行. 料得年年腸斷處, 明月夜, 短松岡.)
―‘강성자(江城子)·을묘년 정월 이십일 밤의 꿈을 기록하다·乙卯正月二十日夜記夢)’ 소식(蘇軾·1037∼1101)
이때 동파의 나이 마흔. 권력을 주도한 왕안석과 갈등을 겪자 자청하여 지방관을 전전할 때였으니, ‘얼굴은 세속의 때에 절고, 귀밑머리엔 서리 내렸다’는 표현이 그냥 엄살은 아닌 듯하다. ‘강성자’는 곡명, 내용과는 무관하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