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올해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두 번 관람한 작품이 있다. 일본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된 비참한 사실을 배경으로 한 모리 다쓰야 감독의 영화 ‘1923년 9월’이다. 원제목은 ‘후쿠다무라사건(福田村事件)’으로,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5일 후인 6일에 지바현 후쿠다무라(현 노다시)에서, 시코쿠에서 온 일본인 약장수 일행이 조선인으로 오인받아 15명 중 9명이 마을 사람들에 의해 살해당한 실제 사건을 취재한 극영화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
간토대지진 100주기를 맞는 올해, 한국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나 역시 서울에서 열린 ‘아이고’전과 문화공간 이육사의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 추모사진전’ 등 몇 가지 행사에 관심을 갖고 다녀봤지만 이 영화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학살을 일으킨 인간의 심리를 알게 됐고, 이러한 사건을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됐다. 또 집단의 광기가 무시무시한 폭력성을 지닌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일이 100년 전에만 있는 것일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참한 전쟁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에 치우친 보도나 허위 뉴스를 믿고 극단적 의견을 갖게 되는 현재 우리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모리 감독은 9일 작품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영화를 제작한 이유를 이와 같이 말했다. “현재 일본은 실패나 좌절 따위는 모두 잊고 성공 체험만을 기억하는 사람과 같은 나라가 되어 있어요. 정치도 언론도 교육도 그런 분위기에 젖어 있어요. 그래서 영화를 통해 저는 이야기합니다. 자신들이 어떤 실수를 했는지, 자신들이 어떤 가해 행위를 저질렀는지, 아시아에 어떤 민폐를 끼쳤는지요. 몇 명을 죽였는지요? 그걸 기억해야만 합니다.”
감독은 간토대지진이 일어난 지 100년 되는 9월 1일 일본에서 영화를 개봉했고, 일본인 관객 앞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줘 예상보다 훨씬 큰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한다. 나도 감독과 같은 생각이 들었고,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오랜만에 속이 시원했다.
영화를 관람한 일본 관객들이 쓴 리뷰를 살피면 최근 조선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본 정부의 보수화에 대해 우려하는 일본인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아 다행이다. 영화에는 조선인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자, 부락민, 여성 등 차별을 당한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인간 속에 깊숙이 숨어 있는 차별 의식, 집단 속에서 이성을 잃은 광기가 어떤 짓을 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영화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 최우수작을 이 작품에 줬다. 일본 사회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해 온 모리 감독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인 ‘1923년 9월’은 “묻혀 버린 역사를 불러내 정면으로 마주 대하는 용기를 응원한다”라는 심사평을 받았다. 물론 작품성에서도 뛰어났음을 인정받았다.
모리 감독은 ‘영화가 한국에서 일반 상영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모리 감독의 꿈이 이뤄지고 많은 한국인도 관람하며 여러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라본다.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나누기 위해 말이다.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서경대 글로벌비즈니스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