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인의 잔치 모습을 새긴 중국 서안 안자묘 벽 장식. 실크로드는 물건뿐만 아니라 문화가 교류하는 통로였다. 마치 지금의 케이팝처럼 아시아 각국의 노래와 춤이 실크로드를 통해 멀게는 유럽까지 전파됐고, 이국적인 선율과 패션으로 각지에서 인기를 끌었다. 강인욱 교수 제공
음악과 춤 교류의 장, 실크로드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군무를 추고 있는 당나라 무희 토우와 소그드. 실크로드는 물건뿐만 아니라 문화가 교류하는 통로였다. 마치 지금의 케이팝처럼 아시아 각국의 노래와 춤이 실크로드를 통해 멀게는 유럽까지 전파됐고, 이국적인 선율과 패션으로 각지에서 인기를 끌었다. 강인욱 교수 제공
英, 고조선에 전파된 실크로드 하프
영국 고대 왕족 고분인 ‘서턴 후’에서 출토된 하프. 고대 카자흐스탄 유적에서도 같은 하프가 발견됐다. 우리 고대 악기인 ‘공후’도 하프를 뜻한다. 강인욱 교수 제공
中日에서 유행한 고구려, 발해 음악
아이돌은 신라에도 있었다. 신라 토우에 새겨진 수많은 장면에는 무아지경에 빠져서 춤을 추고 나팔을 연주하는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역사 기록에는 정작 신라의 관악기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태평소로 불리는 ‘쇄납’이 있으니, 이는 페르시아의 ‘수르나이’ 또는 ‘주르나’에서 기원한 것으로 지금도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악기이다. 그 밖에 수많은 악기가 신라에 채용돼서 발달했다. 다른 유물과 달리 음악과 같은 소리는 고고학 유물로 찾아낼 수 없다. 하지만 음악에 열중하는 악사, 그리고 그를 보며 황홀경에 취해 잔치를 벌이는 모습의 토우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도 너무나 닮아 있다.
실크로드의 음악이 꽃핀 또 다른 나라는 발해와 고구려였다. 실제로 고구려 벽화에는 실크로드와 중국 등 여러 지역과 교류하며 화려한 음악과 무용으로 위세를 떨쳤던 고구려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고구려의 음악은 멸망된 직후 당나라로 대거 유입되어서 100년 넘게 당나라 궁중과 도시 곳곳에서 연주되었다. 나라를 잃고 당나라 곳곳에서 정착했던 고구려의 유민들도 그 음악을 즐기며 향수를 달랬을 것이다.
실제로 발해악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는 일본으로 발해의 사신이 일본으로 갈 때는 반드시 예술인들을 대동했다. 이후 헤이안시대를 거쳐 ‘보카이카쿠(渤海樂)’는 일본 궁중 음악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또한 헤이안시대에 반대로 그 음악을 체화시켜 발해를 거쳐 당나라로 무희들을 보내기도 했다. 중국 본토에서는 송나라와 금나라의 궁중에서도 발해악이 연주되었고, 심지어는 너무 인기가 있어서 금지했다는 기록마저 있었으니 가히 케이팝의 기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융화와 창의성이 케이팝의 기반
삼국시대 이래로 한국의 예술문화가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데는 실크로드에서 시작된 다양성에 기반한 예술적 특성이 있었다. 원조를 따지기보다는 다양한 문화의 융화와 창의성이 기반이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케이팝과도 상통한다. 적당히 신선하되, 언어를 몰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낸 그 음악의 정점에 실크로드와 한국의 케이팝이 있다. 그 역동성은 서로의 치열한 경쟁과 통합으로 유지되었다. 실크로드는 결코 한 지역이 아니다. 쿠차, 고창, 카슈가르, 안국(부하라), 강국(사마르칸트), 천축(인도) 등 각 지역의 음악은 서로 경쟁하며 당나라에서 경쟁했다. 때론 쿠차의 피리가 인기를 끌기도 하다가 북방 유목민의 군악대가 인기를 얻고, 다음에는 인도식 음악이 유행하는 식이었다. 어느 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중심지는 옮겨갔다.
그들의 패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신라의 문호 최치원이 쓴 ‘속독(束毒·소그드를 뜻함)’에도 잘 남아있으니, 곱슬머리를 한 파란 가면을 쓴 이국적인 사람들의 음악과 춤을 노래한 것이다. 이국적인 외모와 화려한 비단으로 수놓은 첨단 패션의 옷을 입은 악단과 무희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주었다. 이렇듯 이질적인 실크로드의 예술과 음악이 한반도에 꽃피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함께 즐기며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다양성을 용인하고 즐기던 사회 분위기가 있었다. 케이팝의 실체는 한민족만의 위대함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조화시킨 거대한 용광로다. 우리만의 문화라는 자긍심 대신에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공통적인 관심을 찾아내고 즐거움을 주었던 고대 실크로드와 한국의 아이돌로부터 문화의 미래를 모색해보면 어떨까.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