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2020년 의료계 파업 당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입구에서 전공의가 정부에 항의하는 포스터를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정원 증원 소식에 몰아친 ‘의대 광풍’
정부가 3년 만에 다시 의대 정원 증원에 나섰다. 2020년에는 의료계의 격렬한 반대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 막혀 포기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우호적인 여론에 힘입어 10월 26일 보건복지부는 ‘지역 및 필수 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의사 인력 확대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증원 숫자를 의료계 등 전문가들과 협의를 거쳐 내년 상반기까지 확정하고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부터 이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아직 논의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기존에 공개된 정보와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정부 계획안을 볼 때 의대 정원은 적어도 수백 명에서 1000명 이상 증원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국 의대 정원이 3058명이고, 그 숫자가 20년 넘게 동결돼 있었던 걸 감안하면 유례없이 큰 폭의 증원이다.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겠다고 밝힌 가운데 16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한 학생이 병원 건물 앞을 지나고 있다. 뉴스1
● 의사 고소득, 지금 같지 않을 수도…
의사가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 된 건 근래 새로운 일이 아니다. 기자가 고등학생이었던 20여 년 전에도 우수한 학생들이 의대에 가기 위해 줄을 섰다. 인기의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무(無)정년에 안정적인 고용 형태, 사회적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 고소득 직종이라는 인식이다. 고소득 직업의 예를 들 때 의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실제 의사들의 평균 소득은 일반 직장인보다 높고, 일부 잘 나가는 미용시술 위주 병원 의사들의 경우 1년에 수십억 원을 쓸어 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의사 정원을 늘리고 10년, 20년이 지난 뒤에도 지금과 같을까. 의사들을 대변하는 직군 단체 대한의사협회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의대 정원 증원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여러 공익적인 이유를 들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수익 때문일 터다. 어느 직업군이든 동일 직업인이 갑자기 급증하는 걸 반길 집단은 없다. 특히 자격증이 필요한 폐쇄적인 집단일수록 더욱 그렇다. 시장이라는 파이가 함께 커지지 않는 이상 같은 크기 파이를 쪼개 나눠야 할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의사 정원이 지금보다 1000명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경쟁은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30% 이상 심해질 것이다. 그만큼 파이도 쪼개야 하고 말이다.
특히 서울 등 의료진이 몰릴 수도권은 더 말할 것 없다. 현재도 우리나라 전체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지만, 서울의 경우 3.47명으로 OECD 기준에 가깝다. 최근 한병도 의원실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2021년 의료업 사업소득 신고 현황에 따르면 의료인 평균 사업소득은 서울이 3억 4700만 원, 경기 3억 300만 원, 울산 3억 8200만 원, 충남 3억 8100만 원으로 지방이 더 높았다고 한다. 전국 4만1192개 병·의원 사업장 중 수도권에만 2만 2545개가 몰려있는 탓이다.
● 고령인구 증가, IT기술 발전도 변수
더구나 의료시장의 소비자가 될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낸 ‘세계와 한국의 인구 현황 및 전망’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는 2022년 5200만 명에서 2070년 3800만 명으로 줄어든다. ‘슈링코노미’, 소비자 10명 중 3명이 향후 40여 년 새 사라지는 셈이다. 정부는 인구가 줄어도 고령인구가 빠르게 증가해 의료수요는 되레 늘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은 현재 17.5%에서 2070년 46.4%로 급증하긴 한다. 전체 인구가 줄어도 노인은 늘어나는 구조다. 정부 말처럼 고령층에 의한 의료수요는 늘 수 있다. 하지만 고령인구가 증가하면 상대적으로 미용 등 소위 ‘돈이 되는’ 고비용 진료보다 필수적인 진료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고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병원들은 대부분 미용 관련 시술을 하는 곳들인데, 미래에는 지금만큼 ‘돈을 쓸어 담기’가 쉽지 않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의료 관련 과학기술이 계속 발전하는 것도 변수다. 전문가들은 의사 대신 집에 있는 헬스 기기가 매일 아침 주인의 혈압, 혈당 등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맞춤 식단과 치료법을 소개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아직은 여러 규제에 막혀 논의가 지지부진하지만, IT기술 진화로 원격진료나 처방, 약 배달 등 의료시스템에 대한 변화 요구도 점차 본격화할 것이다. 이런 기술들이 하나둘 일상화되면 의사나 병원 수요는 생각만큼 커지지 않을 수 있다.
● 의사가 좋다니까…‘아묻따’ 의대 열풍
여기에 더해 갈수록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건보 재정까지, 미래 의료시장에 대한 불안 요소는 넘쳐난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는 소식에 부나방처럼 달려들고 있는 이들이 이런 상황을 충분히 고찰했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정부가 정원 증원을 추진한 주요 이유가 지방, 필수 의료, 의과학 인력 부족인 만큼 늘어난 의사 정원 중 대부분은 이들 분야로 분배될 텐데 이 역시도 감안했을까. 등용문이 넓어진다니 이참에 의사가 되어 의료시설이 부족한 지방으로, 손이 모자란 응급의료로, 의과학 분야로 가서 일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라면 박수 치며 응원하겠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중·고등학교 교과 선행학습을 시킨다는 초등 의대 입시반에 들어가는 아이와 그 부모들이 그런 미래를 생각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의료진들이 헬기를 타고 이송된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DB
● 과도한 학습에 일찍부터 내몰리는 아이들
이런 상황인데 어린아이들이 멋모르고 지나친 경쟁에 너무 일찍부터 내몰리는 걸 보면 안타깝다. 한국청소년연구원이 초·중·고 학생 29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 어린이의 하루 중 학습 시간은 9시간 38분에 달했다. 고등학생에서 중학생, 초등학생까지 평균한 값이 이 정도다. 여가 시간은 6시간 14분으로 학습 시간보다 3시간 적었는데, 그나마도 1시간 26분은 게임, 2시간 7분은 친구와 떠드는 시간이었다. 아마 의대반 같은 곳을 다니는 아이들은 그런 시간조차 쉬이 내기 어려울 터다. 서울 시내 한 놀이터 모습. 동아일보DB
부디 어른들이,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현명하게 숙고해주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말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 좋아서, 의학 연구가 좋아서 의대에 가려는 아이들도 많이 발굴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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