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혁신위원회를 이끌게 된 인요한 박사가 2012년 3월 21일 법무부로부터 대한민국 국적증서를 받은 뒤 태극기를 손에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인 위원장은 가문이 구한말부터 4대에 걸쳐 한국에서 의료와 교육 등에 공헌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1호 특별귀화자’가 됐다. 동아일보 DB
민주당 출입 기자인 저는 앞서 올여름 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가 제대로 ‘폭망’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습니다. 혁신을 못 하는 혁신위는 정말 없느니만 못하더군요. 인요한 혁신위가 김은경 혁신위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라며 지켜봤던 주요 관전 포인트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8월 10일 혁신안을 발표하기 위해 국회 당 대표실로 들어서는 모습. 출범부터 ‘친명 혁신위’라는 비판을 받았던 김은경 혁신위는 ‘노인 폄하’ ‘ 초선 비하’ 등 각종 논란 속 결국 이날로 활동을 조기 종료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인요한 혁신위원회에 이름을 올린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과 김경진 전 의원, 오신환 전 의원.
한 여권 관계자는 “비윤계 내에서도 일단 쇄신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로 혁신위를 꾸리려 했다는 의도 자체에 대해선 크게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일단은 지켜보자는 기류”라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도 “윤희숙, 천하람 등 확실한 비윤계에도 혁신위 합류를 제안했지만 그들이 거절한 것 아니냐”라며 “비윤계도 혁신위 인선 면면만 두고 일방적으로 비판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주당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는 모습입니다. 공식적으로는 “구태 혁신위원 인선 그 자체가 실수” “혁신의 주체가 아닌 혁신의 대상들”(강선우 대변인) “비윤은 빠진 ‘비운’ 혁신위”(정청래 최고위원) “60일간 하루 1점씩 까먹는 혁신위가 될 것”(장경태 최고위원)이라고 평가절하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그래도 김은경 혁신위보다는 낫다”라는 분위기가 있네요.
10월 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단식 중이던 이재명 대표(오른쪽)를 위로 방문한 김은경 전 혁신위원장이 이 대표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김은경 위원장은 6월 20일 첫 회의를 열고 “정당 공천 과정에서 현역 의원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체계를 혁파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즉시 “비명(비이재명)계 총선 물갈이를 의도한 발언이냐”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사실 ‘기득권 혁파’, ‘현역 의원 물갈이’ 등의 키워드는 선거를 앞두고는 줄기차게 나오는 ‘클리셰’같은 것인데도 김 위원장이 말하니 다들 들고 일어난 겁니다. 혁신위가 인선부터 워낙 말이 많았던 탓에 그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게 크겠죠.
이재명 대표가 “혁신 기구가 우리 당과 정치를 새롭게 바꿀 수 있도록 이름부터 역할까지 모든 것을 맡기겠다”며 전권을 위임했지만, 이미 ‘친명 혁신위’라는 타이틀이 붙어버린 상황에서 어떤 맞는 말을 하고 제안을 해도 “결국 비명계 공천 학살을 하려는 것이냐” “사법리스크 투성이인 이재명 대표 체제부터 혁신해라”는 반발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비명계인 조응천 의원도 “혁신위 역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지도부의 별동대 비슷하게 보는 것”(6월 15일 CBS라디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김은경 혁신위는 그 뒤로도 혁신 목표와 운영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한 채, 제안하는 쇄신안마다 족족 ‘보이콧’을 당했습니다. 1호 쇄신안으로 내놨던 △의원 전원의 불체포특권 포기 △체포동의안 당론 가결은 의원들의 거센 반발 속 의원총회에서 한 차례 결의가 불발되는 망신도 당했죠. 결국 쫓기듯 부랴부랴 조기 퇴장하면서 내놓은 ‘대의원 투표권 폐지’ ‘권리당원 투표권 비중 강화’ 쇄신안 역시 “결국 개딸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냐”는 비판 속 당내 분란만 키웠습니다.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김기현 대표가 10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만나 웃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혁신위는 위원 구성, 활동 범위, 안건과 활동 기한 등 제반 사항에 대해 전권을 갖고 자율적, 독립적 판단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8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노인 폄하 발언’ 논란과 관련해 고개를 숙인 채 사과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왜 미래가 짧은 분이 일대일로 표결해야 하나”라고 발언해 ‘노인 비하’ 논란을 빚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운데)와 당 지도부가 8월 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노인 폄하 실언을 성토하고 있다. 백드롭으로 ‘민주당의 혁신=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재명호는 사법리스크와 돈봉투 의혹 등 각종 부정부패 논란 속 침몰 위기에 처하자 부랴부랴 ‘김은경 혁신위’를 띄웠지만 결국 더 큰 암초를 만난 꼴이 됐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대패 충격 속 인요한 혁신위를 띄운 국민의힘은 순항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