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의 첫 추리소설 남자로 살아야 했던 여성 주인공 왕실서 벌어지는 수수께끼 해결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정세랑 지음/296쪽·1만6800원·문학동네
당나라에서 통일신라로 향하던 배에서 한 상인이 살해됐다. 갑판에 쓰러져 있는 시신의 목엔 졸린 흔적이 짙게 남아 있고, 몸 뒷면은 멍이 들어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올라타 목을 조르며 무릎이나 발로 누른 듯했다. 누가,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을까.
유학을 떠났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던 신라인 유학생 설자은은 추리를 시작했다. 시신에 진주 장신구가 걸쳐져 있는 걸 보니 범행 목적이 돈이 아닌 것 같았다. 상인은 배에 탈 때 두 여자를 데리고 탔는데 보이지 않았다. 여러 배가 함께 항해하고 있었던 만큼 범인이 살인을 벌인 배에서 다른 배로 옮겨 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조사 끝에 설자은은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낸다. 하지만 설자은은 곧 추리를 그만둔다. 사라진 두 여자가 과거 당나라에 끌려갔던 여성들이고, 상인은 이 여성들을 이용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왜 범인을 밝히지 않냐고 묻자 설자은은 웃으며 답한다. “일단 가기나 갑시다, 금성(서라벌)으로.”
동명 드라마로 제작돼 화제가 된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2015년·민음사)으로 유명한 작가가 3년 만에 내놓은 새 장편소설이다. 남장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설정은 여성 삼대를 통해 여성주의 시각을 담은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2020년·문학동네)를 생각나게 한다. 논리적 사고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은 추리 소설의 전형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공상과학(SF),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문학을 썼던 작가가 추리물에 처음 도전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2편 ‘설자은, 불꽃을 쫓다’, 3편 ‘설자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를 펴낼 계획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계절마다 경주에 가 다음 이야기를 건져오고 싶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