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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최인아]우리가 안세영 선수에게 열광한 이유

입력 | 2023-10-27 22:39:00

‘못했다’보다 ‘성의 없다’는 평가가 더 아파
안세영 선수, 최선 다한 모습이 감동 준 것
중요한 것에 얼마나 진정성 다해 임하고 있나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모든 것이 바쁘게 왔다 가는 우리 사회는 지난 것들을 빨리 잊는다. 불과 한 달여 전에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감동과 흥분도 벌써 저만치 뒤로 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 수영 중계를 보며 훤칠한 청년들의 뛰어난 실력과 승리에 흥분했고 막바지엔 탁구와 배드민턴 등에 열광했었다. 그런데, 수영장 터치패드를 제일 먼저 찍고 포효하는 김우민 선수를 카메라가 비췄을 때 나는 승리에 기뻐하는 그의 얼굴보다 가슴팍 여기저기의 부항 자국에 먼저 눈이 갔다. 우승이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 나이여서일까. 우승의 영광에 닿기까지 그가 감당했을 시간과 상처가 먼저 들여다보였다. 어디 수영뿐이랴. 알다시피 안세영 선수는 결승전 경기 도중 심한 무릎 부상을 겪었다. 통증으로 주저앉은 그녀를 향해 관중석의 어머니는 “세영아, 그냥 기권해!”라고 애타게 소리쳤지만, 그녀는 끝내 경기를 다 치렀고 결국 시상대 맨 윗자리에 올랐다.

그녀의 부상과 투혼을 안타까이 지켜보다 예전 생각이 났다. 어렸을 때는 일을 못했거나 경쟁에서 졌을 때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알아가자 부끄러움을 안기는 것들이 달라졌다. 선배나 클라이언트로부터 성의 없고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 실패했을 때보다 훨씬 부끄러웠다. 차라리 못했다는 평이 낫겠다 싶을 만큼 태도에 대한 지적은 많이 아팠다.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으므로 나는 마음 가운데에 ‘최선’이라는 두 글자를 들였고 시시때때로 들여다보곤 했다. 그렇게 일하다 은퇴 같은 퇴직을 한 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런 소감을 적었다. ‘나는 더 이상 잘하지 못한 것에 미련이 없다.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족하나마 내 능력을 다 쏟아부었으므로 이제 미련 없이 떠난다’라고.

다시 항저우 아시안게임 얘기로 돌아가자. 안세영 선수의 단식 결승전 경기 영상엔 수백, 수천의 댓글이 달렸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 하나하나 읽어 보니 울면서 경기를 봤다는 얘기, 정말로 감동했다는 얘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스무 살 청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살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다들 한마음이 되어 응원하고 감동했던 거다. 이 당당하고 발랄한 선수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나타난 기자회견장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에게 또 한 방을 먹였다. “포기하지 않으니까 되던데요!” 이런 투지가 지금의 안세영을 만들었을 거다. 하지만 마음 한편엔 이런 생각도 있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무리하지 말고 경기를 중단하고 몸을 먼저 살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우승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나…?

무엇이 옳은지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문득 ‘진정성’이란 말이 떠오른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진정성’이란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개인 사이뿐 아니라 기업이 고객에게 진정성을 말하고 사람들은 리더에게 진정성을 기대한다. 그런데 말이다. 이 진정성의 잣대를 자신에게 향하게 하면 어떨까? 나는 자신에게 얼마나 진정성이 있나?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들에 진심을, 최선을 다하고 있나? 나는 나에게 진정성 측면에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을까?

언젠가 ‘일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를 주제로 강연한 후, 당신은 왜 그토록 열심히 일했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나 자신에게 진정성을 다하기 위해서였고 또한 나의 자존을 지키는 방식이었다고, 물론 늘 최선을 다하기는 어려워서 가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때가 있다. 그러고도 일이 크게 틀어지지 않고 웬만하면 안도의 숨을 내쉰다. 함께한 동료나 선후배도 다행이라 여기고 넘어간다. 하지만 한 사람, 자기 자신은 안다. 결과는 나쁘지 않지만 그건 다행을 넘어 요행이라는 것을.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순간을 모면한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고 어깨도 당당하게 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적어도 인생에서 일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일을 붙들고 제대로 해보려 애쓰는 것과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 보려는 노력이 결코 다른 게 아니라고.

그러고 보니 투지, 의지, 성실함, 부지런함, 노력…. 우리는 이런 말들과 꽤 멀어진 것 같다. 그러나 일은 물론이고 ‘부캐’든 사랑이든 운동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고, 애쓰지 않고 이루는 법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안세영 선수에게 열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잃어버린 투지를 그녀에게서 발견했기 때문 아닐까? 투지 같은 건 이미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희소한 거라 반가웠던 게 아닐까?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