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상인·금융소비자단체 회원들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마친 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채무자들을 정부와 은행, 정치권에서 구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10.19. 뉴스1
정부와 여당이 그제 당·정·대 고위협의회를 열고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이 자리에서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1997년 외환위기의 몇십 배 위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나서서 가계부채의 위험성에 대한 강한 경고 메시지를 낸 것은 이례적이다.
실제로 1800조 원을 넘어선 거대한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뇌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국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8.1%로, 스위스에 이어 세계 2위다. 최근 5년간 빚 증가 속도는 IMF가 집계하는 26개국 중 가장 빨랐다. 지난해 3분기를 정점으로 줄어들던 가계부채는 올해 2분기 들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뒤 무섭게 늘고 있다. 이달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 만에 2조50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그간의 행보를 보면 정부가 가계부채 위험 관리에 적극적인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과거 정부에서 유행한 ‘영끌’ 대출”이란 김 실장의 발언부터 적절치 않다. 최근에도 주택 가격이 바닥을 찍었다는 심리에 영끌 대출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부는 부동산 경착륙을 막는다는 이유로 15억 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를 푸는 등 부동산 규제를 완화했고, 이에 따라 집값이 반등하며 주택담보대출 급증으로 이어졌다. 영끌을 과거 정부의 일로만 치부하면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수 없다.
가계부채 대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일관되고 강력한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야 한다. 상환 능력 범위 내에서만 대출이 가능하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이런저런 예외를 만들거나 부처 간 엇박자를 내는 일은 피해야 한다.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대출 규제 강화 등 선제적 대응을 통해 질서 있는 가계부채 축소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