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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뚫고 설치한 미술작품… 물위에서 듣는 바다소리

입력 | 2023-10-31 03:00:00

부산 바다미술제와 시립미술관 극장展
지형-미술관 구조 활용한 작품들 눈길



부산시립미술관 ‘극장’전에서 벽면을 뚫은 모습. 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강물이 바다를 만나는 길목, 파도가 들이치는 해안, 리모델링을 앞두고 바닥과 벽을 뚫은 미술관…. 부산에서 색다른 장소의 맛을 살린 전시가 각각 기장군 일광해수욕장과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3 바다미술제’와 ‘극장’전이다.

14일 개막한 2023 바다미술제는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를 주제로 20개국의 31개 팀 예술가 43명의 작품을 일광해수욕장 일대에서 선보인다. 현대 사회에서 자원의 보고인 바다와 인간의 관계를 대안적 차원에서 돌아보고 상상해보자는 의미로, 그리스 출신 큐레이터 이리니 파파디미트리우가 기획을 맡았다.

대나무 방파제에 구멍을 뚫어 파도가 칠 때마다 피리처럼 소리가 나게 만든 펠릭스 블룸의 설치 작품 ‘바다의 풍문’(2023년). 바다미술제 제공 

전시에서는 지역 일대의 지형을 다각도로 활용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프랑스 출신 작가 펠릭스 블룸의 ‘바다의 풍문’은 덱을 따라 바다로 걸어 나가면 물속에 설치된 대나무에 들이치는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가 나는 설치 작품으로, 바다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영국 작가 게리 젝시 장의 ‘오션 브리핑’은 바다로 흘러 나가는 강물 위에 전광판을 설치하고, 그 위에 바다와 환경에 관한 긴박한 메시지를 담은 자막을 내보낸다. 옛 일광교회 공간 전체에 가느다란 실을 설치해 빛이 뿜어 나오는 듯한 효과를 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무한나드 쇼노의 ‘바다에서의 달콤한 허우적거림’도 돋보였다. 파파디미트리우 감독은 “모든 작품은 재료 대부분을 부산에서 조달하고 제작과 설치도 부산에서 진행했다”고 밝혔다. 바다미술제는 11월 19일까지 무료로 열린다.

부산시립미술관 ‘극장’전은 2024년 리모델링을 앞둔 미술관에서 마지막으로 열리는 전시다. 이 기회를 십분 활용해 미술관 바닥을 뜯고, 벽을 뚫는 과감한 설치가 돋보인다. 미술관을 극장에, 전시장을 무대에 비유한 전시는 작품이 미술관에 설치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또 그 작품이 어떻게 관객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김동희 작가의 ‘호로 이어진 계단’은 미술관 1층 로비와 2층, 2층과 3층을 이어 설치한 계단식 구조물이다. 직선으로 된 난간에 동그랗게 튀어나와 있는 공간에 관객이 직접 서볼 수 있어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느낌을 체험할 수 있다. 김 작가는 미술관 벽을 깎아 내거나, 바닥재를 드러내는 등 공간 디자이너로도 전시에 참여했다.

이 밖에 전시장 가운데에 건축물 조각을 설치하고, 이 조각 내부에 설치된 소형 카메라에 기록되는 영상을 벽면에 투사해 여러 시점을 체험하게 하는 정정주의 ‘일루미너리’, 기억을 공간의 형태로 만든 홍범의 움직이는 설치 조각 ‘기억의 광장’, 미술관 벽면이나 바닥 속에서 신체 장기의 소리가 나도록 만든 최윤석의 ‘허기’,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의 의미를 시니컬하게 조명한 무진형제의 ‘미래의 환영’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두고 예술가들이 얼마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전시다. 12월 17일까지. 무료.



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