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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그림 ‘금강산도’에 숨겨진 오행 풍수[안영배의 웰빙풍수]

입력 | 2023-10-31 15:00:00


조선의 화가 겸재 정선이 1734년 겨울에 그린 ‘금강전도’. 겸재 특유의 진경(眞景)산수화다.


조선 제3대 국왕 태종은 중국인들이 금강산에 목매는 이유가 궁금했다. 태종은 1404년 9월 신하들과 정책을 논의하던 중에 “중국 사신이 오면 꼭 금강산을 보고 싶어 하는데 무슨 까닭인가? 속언에 중국인에게는 ‘고려국에 태어나 친히 금강산을 보는 것이 소원(願生高麗國 親見金剛山)’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그러한가?’ 하고 물었다. 이때 하륜은 “금강산이 동국(東國, 우리나라)에 있다는 말이 대장경에 실려 있으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랬다. 금강산은 경전에 언급될 정도로 신비하고도 장엄한 산이었다. 그래서 중국 사신들은 한반도를 찾을 때마다 금강산에 직접 가보기를 원했다. 그게 여의치 못할 경우 금강산 그림이라도 구해 보기를 간절히 바랐다. 고려와 조선 조정이 중국에 금강산도(金剛山圖)를 그려 보내주었다는 기록도 여럿 있을 정도다.

그림을 통해서나마 금강산의 신령한 기운을 느껴보려는 심리는 사실 중국의 ‘와유(臥遊, 누워서 산천을 유람함)’ 전통과 무관치 않다. 와유는 방안에 누운 채 벽에 걸린 그림 속의 산수(山水)를 감상하거나 산수의 기운을 누리며 즐긴다는 뜻이다. 그 연원은 중국 남북조시대의 화가 종병(宗炳, 375~443)에게서 찾아진다. 종병은 젊은 시절 천하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다 몸이 늙어 더 이상 현장을 찾을 수 없었다. 고심 끝에 대안을 찾아냈다. 자신이 찾아다녔던 산천을 그림으로 묘사해 방에 걸어두고서 마음의 눈으로 유람을 즐기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와유산수(臥遊山水)는 산수화에서도 자연의 기운이 구현된다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의 개념을 전제로 한다. 당연히 자연의 기운을 탐색하는 풍수와도 연결되는 논리다.

우리나라에서 금강산의 와유산수를 확실하게 구사한 화가로는 겸재 정선(1676~1759)이 으뜸으로 꼽힌다. 영조 임금의 그림 선생이었던 겸재는 1734년 겨울 ‘금강전도(金剛全圖)’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장엄한 금강산의 전경을 진경(眞景)산수화풍으로 그려낸 것이다. ‘진경’은 마음에서 느낀 그대로를 그린 진짜 경치라는 뜻이다.

겸재는 대작(가로 94.5cm, 세로 130.8cm)인 ‘금강전도’를 그리면서 화폭 상단에 ‘일만이천봉의 개골산(겨울 금강산), 뉘라서 그 의미를 담아 참 모습을 그려내리’라고 시작하는 제시(題詩)를 써놓았다. 그만이 금강산을 오롯이 표현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이 밴 시구다.

‘금강전도’는 겸재가 노골적으로 자기 자랑을 해도 손색이 없는 걸작으로 평가된다. 화성(畵聖)이라고까지 추앙받은 그의 독특한 화풍이 절묘하게 표현돼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우주관 혹은 세계관까지 작품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겸재는 주역 해설서인 ‘도설경해’라는 책을 쓸 정도로 역학의 대가이기도 했다. 미술사학자 오주석씨(작고)는 사대부 출신이자 도화서 화원인 겸재에 대해 연구한 후 그가 깨달은 주역의 근본 이치 및 태극, 음양, 오행 등의 사상이 ‘금강전도’에 표현돼 있다고 주장했다.

‘금강전도’에 담긴 음양과 오행, 태극 코드. 풍수 원리와도 통하는 산수화다.


동양 산수화의 감상법 중 하나인 기운생동(氣韻生動)으로 ‘금강전도’를 살펴보자. 겸재는 우선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를 한데 모아 원형으로 집약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 중심은 화면 한가운데 만폭동 계곡이다. 금강산 이곳 저곳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들도 모두 만폭동으로 모여든다. 천하 절경을 자랑하는 만폭동의 너럭바위가 화면의 중심이자 기운의 중심이 되는 셈이다. 이곳은 그림 속 기와 외부(화가 혹은 감상가)와의 연결로인 기구(氣口)에 해당하고, 오행으로는 중앙의 토(土)를 상징한다.

만폭동의 토 기운은 계곡의 물길을 따라 화면 아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장안사 입구 무지개다리인 비홍교에 이른다. 이곳은 큰 물을 이룬 곳이다. 오행으로는 수(水)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비홍교 쪽에서 다시 시선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옮아가는데 바위로 이루어진 암봉들이 불꽃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러니까 금강전도의 화면 오른쪽은 화(火)의 영역이다. 이윽고 화의 공간에서 화면 최상단부로 가면 금강산의 최고봉인 비로봉(1639m)이 웅장하게 묘사돼 있다. 양명한 기운이 넘쳐나는 영역으로 오행으로는 금(金)에 해당한다. 비로봉이 종(鐘)을 엎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묘사돼 있는 것도 이곳이 금의 기운임을 표현해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풍수에서는 이런 모양의 산을 금성(金星)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비로봉에서 다시 왼편 아래로 내려오면 삼림이 우거진 부드러운 산이 나타난다. 소나무 잣나무 등 수목이 우거진 이곳은 목(木)기운에 해당한다.

이처럼 ‘금강전도’는 하나의 화면 속에 오행의 기운이 골고루 표현돼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이
다. 그런데 오주석의 연구에 의하면 ‘금강전도’는 중앙 토에서 시작해 토극수(土剋水: 토가 수를 이김), 수극화(水剋火; 수가 불을 이김), 화극금(火剋金), 금극목(金剋木)이라는 오행 상극의 이치가 작동하고 있다. 이는 인간 세상에서는 후천(後天) 상극의 원리가 작동한다는 역의 이치를 표현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뿐만 아니다. 화면 상단의 비로봉과 하단의 비홍교는 음양의 최정점을 암시하고 있다. 불끈 솟은 비로봉과 물이 풍부한 비홍교는 양남음녀(陽男陰女)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곳은 S자 모양의 태극(太極)으로 이어지고 있다.

겸재는 이 작품을 완성한 뒤 “설령 (금강산을) 내 발로 직접 밟아보려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어찌 베갯맡에 기대 (내 그림을) 실컷 보는 것만 하겠는가”하고 제시에서 밝혀 놓았다. 금강산을 직접 가보지 않아도 금강산의 겉 모습과 참 뜻을 표현해낸 자신의 그림에서 와유의 묘미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 부족한 기운은 그림으로 보충

그림을 통한 와유의 즐거움은 현대에 와서도 누릴 수 있다. 동아시아 사람들은 음양과 오행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설명했다는 상식을 이해하면 금상첨화다. 옛 사람들은 산의 형태를 금,목,수,화,토의 오행으로 구분해 산의 기운을 이해했다.

중국 오대(五大;907~979년) 시기의 화가인 형호(荊浩)는 ‘필법기’라는 화론서에서 “뾰족한 형상을 봉(峰)이라 하고, 평평한 형상을 정(頂)이라 하며, 둥근 형상을 만(巒)이라 하고, 산과 산이 서로 잇대 있는 형상을 ‘영(領)’이라고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산의 형태를 오행으로 분류함을 가리킨다. 날카롭고 뾰족한 봉우리를 이룬 ‘봉’은 화산(火山)에 속하며, 정상이 평평한 산은 토산(土山)에 속한다. 봉우리가 둥그스름한 형상은 금산(金山)인데, 봉우리가 둥글면서도 우뚝 치솟은 형태를 하고 있으면 목산(木山)에 해당한다. 또 봉우리와 봉우리가 서로 이어진 듯 물결처럼 보이는 형태의 산은 수산(水山)에 속한다.

풍수에서는 산을 목,화, 토,금, 수의 다섯개 유형으로 분류해 산의 기운을 표시한다.



여기서 오행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간 해석을 해보자. ▲목산은 목의 기운을 상징한다. 목의 기운은 생명력, 성장과 상승, 창의성을 상징한다. 계절로는 봄, 인체로는 간 기능과 관련 깊다. ▲화산은 화의 기운을 상징한다. 화의 기운은 열정, 발전과 확장, 예술성, 종교를 상징한다. 계절로는 여름, 인체로는 심장 기능과 관련 깊다. ▲토산은 토의 기운을 상징한다. 토의 기운은 조화와 중재, 균형, 포용 등을 상징한다. 계절로는 환절기, 인체로는 위장 기능과 관련 깊다. ▲금산은 금의 기운을 상징한다. 금의 기운은 결실, 결단력, 용기, 자기 절제 등을 상징한다. 계절로는 가을, 인체로는 폐 기능과 관련 깊다. ▲수산은 수의 기운을 상징한다. 수의 기운은 지혜, 융통성, 정신과 영혼 등을 상징한다. 계절로는 겨울, 인체로는 신장 기능과 관련 깊다.

이렇게 오행이 강조된 그림에서는 실제로 오행의 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자신에게 필요한 덕목, 혹은 건강상 도움이 되는 오행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 산수화 등 그림 속에서 강조되는 특정 오행을 집안에서 마음의 눈으로 즐기다 보면 절로 부족한 기운을 보충할 수 있다. 바로 이게 ‘와유’의 진정한 의미이자 적절한 예술 풍수일 것이다.



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